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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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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하녀들’
“지배하는 자, 지배받는 자” 광기 그 이상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06.04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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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자의 하루는 지배하는 자 아래서 시작하고 마친다. 두 하녀가 있다. 쏠랑주와 끌레르다. 마담이 없는 시간, 그녀들은 연극놀이를 한다. 끌레르는 마님 역이다. 주인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과장된 제스처와 고상한 말투로 하녀를 비하한다. 그것은 마치 진짜 같아서 관객들을 연극놀이에 몰입, 동참시킨다.


쏠랑주는 하녀 역이다. 그녀는 극중극에서 가장 충실한 하녀이다가도 우발적인 거친 액션과 발성으로 관객들을 순식간에 놀라움에 빠지게 한다. 혼돈을 만들어 내는 쏠랑주다. 여기서 마담은 마담답고 하녀는 더욱 하녀다워야 한다. 이것은 그녀들에게 있어 세상의 전부이자 그녀들을 옭아매는 잣대다.


이들이 연극놀이에 몰입할수록 그들 처지에 대한 비관, 내면의 욕망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극중극이 클라이막스를 닿을 즘, 쏠랑주는 사건을 역전시킨다. 마담에게 자신의 분노를 분출하며 급기야 칼을 휘두르는 데까지 이른다. 칼이 무대 위 공기를 가르며, 극장 가득 긴장감이 맴돈다. 쏠랑주의 칼끝이 클레르의 목에 이른다.


다행이 현실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에 그녀들의 연극은 끝이 난다. 마담의 애인 무슈의 전화다. 그가 가석방됐다는 것이다. 두 하녀는 안절부절못한다. 사실 그들에게도 ‘속사정’이 있었다. 마담의 애인 무슈가 감옥에 갔던 건 두 하녀의 거짓밀고 때문이었던 것. 마담이 도착하면 연극놀이도, 그들의 욕망도 또다시 아래로 침전된다. 그 때 그녀들은 가장 하녀다운 하녀다.


무슈가 가석방됐다는 소식에 이야기는 점점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죄책감에서 비롯한 그들의 불안감은 ‘광기’와 ‘편집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마담을 살해하기로 한다. 마담이 돌아왔다. 마담은 하녀들을 천하게도 여기지만 끔찍이 아끼는 척도 한다. 이는 자신의 우아함을 드러내기 위한 어떤 수단에 불과하다.


하녀들은 마담을 찬양한다. “마님은 아름다우십니다!” 그리고 한 편으론 살해 음모가 성공하길 바란다. 하지만 죽음의 공모는 곧 실패로 이어지고 만다. 하녀라는 신분의 경멸에서 살인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이 더해 그들은 더욱 상상력을 동원, 마담이 나가고 또다시 연기놀이에 집중한다.


장주네 원작의 연극 ‘하녀들’은 혼신을 다한 연희단 거리패, 그 명성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압권이다. 정극에서 볼 수 있는 느린 동작과 정갈한 대사에 순간 소름끼치는 ‘도발’, 극적인 연출, 관객들을 최대로 끌어들이는 무대연출과 음악 이 모든 게 호흡이 척척 들어맞았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화려한 마담의 공간과 어둡고 초라한 하녀의 공간으로 대조적 연출이 돋보인다. 마담의 공간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사회적인 통념, 질서 등 사회적 가치체계가 존재한다. 하녀들의 공간은 하녀로서의 현실직시와 숨겨진 욕구의 분출구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감정들을 관대하게 하나로 아우르는 공간은 창가 발코니다. 이 공간은 그들의 연극놀이, 살해 등 모두가 드러날 수 있는 폭로의 공간이자, 밖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이 연극에서 유일하게 진실할 수 있는 단 한 공간이다.
 
마지막 클레르는 극중극에서 마담을 연기하며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약물 살해를 자신이 대신해 실현한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아름답고 우아한 마담의 자태와 말투를 잃지 않는다. 이어 조명이 꺼진다. 극 초미부터 말미까지 관객들을 조이던 긴장감의 끈도 단번에 풀린다.


이 연극은 비단 하녀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소외된 자들의 욕구와 비탄을 대변한다. 그들은 비현실, 명예와 아름다움 등을 꿈꾼다. 따라서 가상현실로 자신을 끌어들이는 순간 가장 용기 있는, 야망을 품은 자가 된다. 그러나 지독한 현실이 잠식된 비현실의 달콤함은 그 커튼을 걷어내는 순간 발가벗은 것처럼 진실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이처럼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인간 내면의 광기와 본능을 감춤 없이 모두 까발리고 있다. 이를 통해 소외된 자, 지배받는 자의 슬픔도 극대화된다.


게릴라 극장이 준비한 연희단 거리패의 대표 레파토리, 연극 ‘하녀들’은 장주네 탄생 100년 페스티발의 일환으로 이달 6일까지 게릴라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뉴스테이지 김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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