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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와 강신호, 두 명의 마누라, 그리고 권력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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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와 강신호, 두 명의 마누라, 그리고 권력과 돈
첫째-둘째 부인 자식 둘러 싼 골육상쟁 100% 닮은 꼴 '결론'주목
  • 유태현기자 yuthth@hanmail.net
  • 승인 2007.02.26 08: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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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 강신호 회장과 둘째아들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의 부자간 경영권 암투가 점입가경이다.

경영권을 지키려는 아버지와 이를 ‘찬탈’하려는 아들의 대결이 600년전 조선 개국 초기 태조 이성계와 왕자의 난을 일으킨 아들 태종간 암투와 너무나 흡사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 개국 초기 1차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이방원의 난’의 배경은 이렇다. 태조 이성계는 2명 부인(신의 왕후 한씨와 신덕황후 강씨)과의 사이에 8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를 두었다.

장남 방우부터 6남 방언까지는 첫째부인인 한씨 소생이었고 7남 방번과 8남 방석은 강씨소생이었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 당시 부친을 가장 잘 보좌한 개국공신이었다.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인 것도 이방원이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정몽주 살해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이방원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부친의 총애에서 멀어짐을 느끼며 설움 받던 이방원의 분노는 세자 자리가 막내인 8남 방석에게 돌아가면서 극에 달했다.

이성계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강씨가 자신의 소생을 밀어 올린 것이다. 화가 난 한씨 소생 왕자들은 이방원의 주도하에 단합해 이복동생인 방번과 방석을 모두 죽여 버렸다.

이것이 1차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이방원의 난'이다. 이방원은 그러나 도의상 곧바로 세자자리에 오르지 않고 둘째 형인 방과를 세자로 책봉했다.

그가 나중에 조선의 2대왕 정종이 됐다. 이성계의 장남인 방우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 은연자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2차 왕자의 난은 방원의 바로 윗 형인 넷째 방간이 방원을 제거하기위해 일으킨 난.

그러나 정보를 미리 입수한 방원이 방간 세력을 조기에 진압했다. 이로써 방원은 세자의 자리를 확보한 뒤 이후 3대 태종으로 등극했다.

동아제약 '강문석의 난'도 '이방원의 난'과 다르지 않다.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80)은 슬하에 아들 넷, 딸 넷을 두고 있다.

부인도 둘이다.태조 이성계의 가족구도와 흡사하다. 첫번째 부인 박정재씨와의 지난 70년대부터 별거에 들어갔고 두번째 부인인 최모씨와 30여년을 함께 살아왔다.

박씨는 단지 호적상의 부인이었고 함께 생활하는 것은 물론 공·사석 모임에도 최씨가 동행했다.

이같은 30년의 ‘이상한 동거’는 2004년 박씨가 황혼이혼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명실공히 동아제약의 후계자로 지목받던 강문석 대표도 낙마했다.

강대표는 강신호 회장의 차남이며 첫번째 부인 박정재씨와의 소생이다. 강회장은 첫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장남 의석씨와 문석씨를, 두번째 부인 최씨와의 사이에 3남 우석씨와 4남 정석씨를 두었다.

의석씨는 동아제약 지분을 보유하곤 있지만 경영 참여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성계의 가족구도와 그야말로 판박이다. 야심만만한 차남 강대표는 서울대 산업공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산업공학 석사, 하버드대 MBA출신으로 제약업계에 흔치 않은 ‘인재’.

그는 1987년 동아제약에 입사해 기조실장, 부사장을 거치며 후계 수업도 착실하게 거쳤다. 누구나 그가 동아제약의 '세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2003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자 세자답게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부실 계열사를 정리하고 인력 구조조정도 실시했다. 박카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전문의약품 사업도 크게 강화했다.

이방원이 태조 이성계를 도와 혁명을 주도해 나가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강회장은 강대표의 이같은 ‘과격한’ 경영혁명을 그리 달가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이 키운 ‘나무줄기’들이 잘려 나가는 모습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이성계가 이방원의 정몽주 살해 같은 과격한 충정을 달가와 하지 않은 모습과 똑같다.

강대표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2년뒤인 2004년말 강회장이 그에게서 대표이사직을 박탈한 것이다.그리고 둘째부인 최씨의 소생인 강정석 전무를 중용했다.

강대표는 분루를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기의 칼날을 갈았다. 2005년 4월 그는 드디어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수석무역 대표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수석무역은 주류 수입 판매회사로 동아제약의 계열사지만 강대표가 51.2% 로 최대 지분을 갖고 있다.

왕자의 난의 서곡이었다. 수석무역을 기반으로 강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동아제약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집했다.

경영권을 노린 반란이었다.드디어 지난 1월 우호지분까지 합쳐 14.71%를 확보, 최대주주의 자리에 오른 그는 1월말 최대주주의 자격으로 자신이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주주제안을 냈다.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통보나 다름 없었다.그러나 아버지는 지난 22일 이사회에서 이를 거부했다. 아들은 주주로서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했다며 법정 소송을 낼 계획이다.

조선시대 왕자의 난은 이방원이 1차와 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이복동생들을 죽이고 아버지가 함흥차사 한 뒤 3대 태종으로 보위에 오르는 것으로 끝났다. ‘강문석의 난’의 결말이 과연 ‘이방원의 난 ’의 결말과 어떻게 다를지 혹은 같을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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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 2007-02-26 15:39:44
아하 그렇군~ 왜 아버지와 아들이 피비린나게 싸우나 했더니,. 나라도 큰 마누라 자식이면 가만안있지. 작은 마누라하고 그 자식에게 재산이고 적통권이 모두 넘어간다면. 마누라 둘 있으면 꼭 이런일 벌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