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국내 빌딩시장을 장악했던 외국계 투자자들이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국내 빌딩을 잇따라 매물로 내놓고 있다.
업계는 미국 투자은행(IB)과 펀드들이 최근 주식시장에서 대거 자금을 빼내간 데 이어 보유하고 있던 상업용 빌딩까지 매물로 내놓고 있는 것은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아시아 내 자산을 현금화하려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21일 증권업계와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GE캐피탈의 GE리얼이스테이트가 강남의 N빌딩과 T빌딩, 분당 소재 C빌딩을 매물로 내놓았다. 외신들은 미국 내 GE캐피털의 3분기 실적이 작년 동기보다 38%나 감소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또 최근 금융위기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된 메릴린치가 SK 서린동 빌딩을 SK그룹에 되사 달라고 요청하는 등 매각에 착수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아울러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한 리먼브러더스의 명동 유투존, 동대문상가의 쇼핑몰 라모도, AIG의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도 매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서 호주계 금융그룹 맥쿼리그룹의 ㈜맥쿼리센트럴오피스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는 최근 회사 청산에 맞춰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 매각에 나섰으며,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가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이유로 인수를 포기하자 2순위였던 국민연금에 매각키로 계약을 체결했다.
극동빌딩은 도심 중심상업지역에 있어 매각대금을 최대 4천억 원 정도로 예상했으나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인 3천250억 원에 팔렸다.
업계는 극동빌딩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매각된 데다 최근 이마저 불발될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돌자 증시나 다른 부동산시장과 마찬가지로 상업빌딩 시장에서도 가격하락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설정한 펀드가 보유한 강남의 S빌딩도 최근 인수의향서(LOI)를 투자자로부터 받았으나 기관들이 참여하지 않아 유찰된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투자자문사 저스트알의 김우희 상무는 그러나 "국내 경기침체가 가시화하고 있어 국내 투자자들이 이들 매물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게다가 외국계 투자자들이 매각자금을 한꺼번에 해외로 가지고 나갈 경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국내 환율시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맥쿼리 등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과 펀드들은 최근 들어 5% 이상 지분을 투자하고 있는 국내 상장사들의 지분을 잇따라 축소하는 등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투자 자금을 급속하게 빼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