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생긴 휴일이다. 느긋하게 일어나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 후, 문화생활도 할 겸 대학로로 향했다. 오늘 볼 공연은 포스터와 티켓부터 펑키했던 쉬어매드니스. 안내에 따라 공연장 안으로 발을 내딛자 상큼한 헤어제품 냄새가 내 코를 감쌌다. 곧이어 비비드한 컬러로 이루어진 미용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득 방금 내 머리를 만져주었던 남자 미용사가 떠올랐다. 미용사가 보는 이 공연은 어떤 느낌일까?
아직 시작시간이 아닌데 무대 위에선 미용사 언니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좀 더 있으려니 남자 미용사가 나와 일할 준비를 하고 들어온 손님을 맞는다. 핑크색 티셔츠에 달라붙는 바지, 뾰족 구두를 착용한 이 미용사는 게이스러움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소 과장스럽게 행동했다. 음, 내 미용사가 이런 장면을 보면 좀 불편해하겠는데? 그들의 행동을 보고 있는 동안 어느새 개연시간은 지나있었다.
이 공연에 대한 아무 지식 없이 온 나는, 모든 등장인물이 중간에 약간씩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형사가 등장하면서, 이제 형사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극이 진행되겠거니 생각하며 잠자코 있었다. 허나 그 순간, 형사는 객석을 향해 사건을 풀 수 있는 소스를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객석엔 조명이 들어왔다. 형사는 방금까지의 행동을 용의자들에게 재연시켰고, 객석의 몇 명은 무대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실마리를 제공했다. 몇 개를 듣던 형사는 인터미션 때 나에게 제보를 해 달라며 무대 밖에 있는 책상에 계속 앉아있었다.
인터미션이 끝났다. 난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몰랐는데, 그 사이에도 등장인물들은 의문의 행동들을 계속 했던 모양인지 또다시 관객 몇 명이 나는 몰랐던 단서를 차례차례 진술하기 시작했다. 형사는 수첩에 적으며 하나하나 확인해 갔고, 나중엔 확고한 알리바이를 발견한 한 명을 용의자로부터 제외시켰다. 형사는 관객을 향해 남은 용의자 중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을 거수로 투표해달라고 했다. 투표가 끝난 후, 형사는 제일 표를 많이 받은 용의자를 범인으로 지목하였다. 난 다른 용의자를 의심했었기 때문에 이게 뭔가 싶어서 잠시 어리둥절해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범인의 자수와 형사의 클로징 멘트에, 나는 비로소 이 공연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아, 이 공연은 관객에 따라 범인이 바뀌는 거였구나. 그래서 다들 수상했던 거였구나. 왠지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공연장을 빠져나오면서 다짐하였다. 나도 다음엔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해서 내가 원하는 엔딩을 보고 말리라.
[뉴스테이지=이다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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