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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피플] 이 남자의 흥미로운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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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피플] 이 남자의 흥미로운 변신
뮤지컬 배우 최성원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9.08.12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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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알간 이미지의 순정남. 혹은 여성적 감수성을 지닌 여린 남자. 2001년 데뷔 이래 줄곧 최성원을 지배해온 이미지다. 물론 ‘사랑을 비를 타고’의 동현이나 ‘로미오와 베르나뎃’의 디노와 같이 간혹 터프가이나 바람둥이를 연기하기도 했지만 최성원이 구축해온 달콤한 이미지를 무너뜨리진 못했다. 그런데 이 남자. 달라졌다. 지난 해 뮤지컬 ‘클레오파트라’에서부터 뭔가 달라진 낌새를 솔솔 풍기긴 했지만 최근의 선택은 놀랍기만 하다.
본격 코믹창작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에서 말년의 이순신 장군으로 분한 것. 민족의 영웅 이순신인데 노인 역할이면 좀 어떠냐고? 모르시는 말씀. 난중일기에 기록되지 않은 이순신 장군의 3일 간의 행적을 다루고 있는 ‘영웅을 기다리며’의 이순신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에 ‘쓰벌’이라는 욕을 입에 달고 살고, 고구마 하나에 목숨을 걸며, 언제쯤 다시 주상 전하가 불러주실지 노심초사하는 그야말로 웃음을 위해 한껏 망가지는 캐릭터다. 멜로물의 주인공을 도맡아 해온 최성원이 의외의 선택을 한 이유,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의외의 선택? 코미디는 나의 장기

얼마 전 그가 차기작으로 ‘영웅을 기다리며’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작품 속에서 러브 라인을 구축하는 젊은 일본인 장수 사스케를 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순신이라니.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자마자 다짜고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부터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제의를 받고 공연을 봤어요. 근데 너무 재밌는 거야. 사스케와 이순신 중 뭘 하겠냐 하셔서 주저 없이 이순신을 하겠다고 했죠. 제가 보기에 이순신이 뭔가 만들어가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도전 의식이 생기더라고요. 내 이미지를 깰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이순신을 하는 것을 두고 많은 분들이 의외의 선택이라 하시는데, 왜 그럴까. 난 내가 참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웃음)”

물론 최성원은 코미디에 강한 배우다. 코믹한 캐릭터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멋진 남자라는 테두리 안에서 선사하는 웃음이었기에 노인 분장을 한 채 본격적으로 망가지는 최성원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웃기는 이순신으로 무대에 서기까지 고민이 전혀 없었을까?

“작품에 있어서 망설여지는 부분은 전혀 없었어요. 다만 실제 저보다 나이 많은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연습 과정에서 제 소리나 외모에 대한 걱정을 많이 들어서 그게 염려되긴 했죠. 웃긴 게 보통은 스태프들이 배우를 설득하고 토닥거리고 하는데, 이번엔 제가 스태프들을 설득했어요. 의상 갖춰 입고 수염 붙이면 괜찮을 거야 하면서. (웃음)”

굳은 결심을 하고 작품 연습에 임한 최성원. 그러나 코믹한 이순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생전 처음 하는 사투리 연기도 힘들었고, 노인 분장도 어색하기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관객을 자연스럽게 웃길 수 있는 연기에 대한 고민이었다.

“배우는 캐릭터에 접근하기 위해 가장 먼저 리얼리티를 찾아요.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은 황당한 상황이 많고 비논리적인 부분도 있어서 그것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코미디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타협점을 찾아나갔죠.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온 고구마가 극중에 등장하는 결정적인 오류도 코미디니까 관객 분들이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요.”

고구마는 ‘영웅을 기다리며’를 대표하는 소품이다. 사스케에게 포로로 잡혀 끌려 다니던 이순신이 고구마 하나 얻어먹어보려고 용을 쓰는 장면은 관객들이 가장 많이 웃는 장면 중 하나. 최성원은 이 장면에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단다.

“참 웃긴 장면인데 말이죠. 이 장면 연습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어릴 때 집에 쌀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배고파서 울었던 기억, 또 군대 시절에 사발면 좀 혼자 먹어보겠다고 옷 속에 숨겨서 먹다가 국물을 쏟아서 혼났던 기억도 나고요. (웃음)”

- 공연 첫 날, 몇 년 만에 느껴본 떨림

그렇게 완성해간 자신의 이순신을 관객에게 처음 선보이던 날. 최성원은 연기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고.

“정말 몇 년 만에 떨어본 거 같아요. 다행히 객석에서 볼 땐 티가 안 났다고 하데요. 친분 있는 배우들도 와서 많이 응원해주고 해서 참 고맙더라고. (웃음) (민)영기 형은 두 번이나 봤어요. 형이 연기했던 이순신이랑은 완전히 다르니까 이걸 과연 어떻게 풀었을까 궁금했는데 너무 재미있고 첫 공연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해줘서 기분 좋았죠.”

연기 변신에 대해 칭찬하는 주변의 반응을 전하자 입가와 눈가가 초승달처럼 휘어지며 미소를 짓는다. 노인 분장이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을 보니 이제 동안(童顔) 성원의 시대도 간 것 같다고 농을 쳐보니 발끈하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여유가 느껴진다. ‘알타보이즈’의 마크, ‘뮤지컬 이’의 공길 등을 연달아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게이 전문 배우라 부르던 시절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왜 이래요. 내 액면은 아직 이십대 중후반이야. (웃음) 근데 서서히 내 나이를 찾아가는 게 싫지 않아요. 이제 최성원의 미소년 이미지는 사람들의 추억 저 편으로 사라지는 것 같아. (웃음) 예전엔 동안 이미지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젠 어려 보이면 어려 보이는 대로 나이 들어 보이면 또 그런대로 즐기려고요. 물론 관리의 필요성은 느껴요. 살 빼야지. 어휴 (웃음).”

최성원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은 비단 캐릭터뿐만이 아니다. 발성과 창법도 바뀌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얇고 고운 미성이 좀 더 두툼하고 중후해졌다.

“타고난 소리 자체가 그런 것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저의 미성은 작품의 캐릭터가 필요로 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낸 거예요. 이순신이 그렇게 달콤한 소릴 내면 안 되죠. (웃음) 어릴 때 좀 더 남자다운 소리를 내고 싶어서 형들 쫓아다니며 어깨 너머로 배우고 했던 게 지금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어떤 캐릭터든 한결 같은 창법으로 부르는 배우들이 있는데 난 그건 아닌 것 같아.”

- ‘영웅을 기다리며’는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

최성원은 지난 해 뮤지컬 ‘클레오파트라’를 하며 변화의 조짐을 보였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캐스팅 리스트의 맨 윗줄을 차지했던 그가 한참 뒤로 밀려나는 조연 ‘옥타비아누스’를 맡은 것. 처음엔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최성원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 소중한 작품이 되었다.

“옥타비아누스를 연기하면서 주인공이 다가 아니란 것을 느꼈어요. 조연으로 서니까 좀 더 시야가 넓어져. 주인공일 땐 나 하나 어필하는데 몰두했다면 중심에서 벗어나 배경으로 있을 때 뭘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고요. 내가 어떻게 해야 주인공이 더 빛나 보일까 하는 고민들. 예전엔 받아먹기만 했다면 이제는 배려하는 법을 배웠고요.”

올 초 예기치 않았던 공백기 또한 최성원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예정했던 작품들이 엎어지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몇 달의 공백기를 갖게 되었어요. 슬럼프라면 슬럼프죠. 옛날 대본들을 다시 읽어 보고 하면서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죠. 돌이켜 보면 저의 자신감이 남들에게는 자만으로 비쳐졌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의 열정을 떠올리며 나태해진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요. 나를 다잡는 시간이었죠.”

그렇게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선택한 작품이 바로 ‘영웅을 기다리며’다. 본격 코미디물이니만큼 순발력 좋기로 유명한 최성원이 얼마나 많은 애드립을 무대에서 쏟아낼까 싶었지만 오히려 그는 대본에 충실하려 한다.

“모르겠어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몰라도 요즘 들어 애드립 같은 것이 참 부질없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관객을 웃기려고 하는 무의미한 애드립은 쓸데없단 생각. 제가 후배들에게 얘기해주는 것 중 하나가 팬들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공연이 산으로 간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하면 관객이 좋아하겠지 하고 즉흥적으로 상황을 만들고 하다보면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훼손되거든. 애드립이란 건 돌발 상황을 현명하게 커버하기 위해 필요한 거지 일부러 그걸 만들어낼 필요는 없는 거거든요.”

최성원이 달라졌다는 것은 단순히 무대에서 그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랜 만에 만난 최성원은 작품에 임하는 자세, 연기에 대한 마인드가 한층 성숙해지고 단단해졌다. 그가 ‘영웅을 기다리며’ 다음으로 선택한 작품 역시 창작물이다. 송일곤 감독의 독립영화 ‘마법사들(2006)’을 뮤지컬로 옮긴 작품으로 10월 중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편집 없이 한 쇼트로 촬영된 실험성 넘치는 독립영화가 어떻게 뮤지컬로 재탄생할지 자못 궁금하다. 최성원의 흥미로운 선택은 당분간 계속될 듯 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즐거울 것이다.

*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는?
이순신 장군의 숨겨진 3일 간의 행적을 가상으로 코믹하게 그려낸 창작뮤지컬. 이순신과 일본 무사 사스케, 고아 처녀 막딸이 우연히 동행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요절복통 스토리. 2008 창작팩토리 우수 뮤지컬 제작지원 최우수작 수상작. 오픈런. 대학로 해피씨어터. 

[뉴스테이지=조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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