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논의는 이 가정 속의 두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질문들 속에는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점과 '언어는 진화하는가'라는 진화언어학 상의 중요한 두 가지 물음에 내재돼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호주출신 저널리스트 크리스틴 케닐리의 '언어의 진화: 최초의 언어를 찾아서'(알마 펴냄)는 언어학자들과 진화생물학자들의 연구와 쟁점을 정리해 집대성하고, 앞으로의 연구를 전망한다.
지금까지 주류 언어학계는 놈 촘스키가 말한 '보편문법'론을 지지해왔다.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유전자에 '보편문법'이라는 것을 가지고 태어나며, 여기에서부터 언어의 모든 구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인간의 언어는 다른 동물들의 어떤 행동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데도 아이들은 놀라운 속도로 언어를 배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이들은 언어를 배우게 하는 정신적 요소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결론을 내렸다.
요컨대 언어는 선천적으로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고, 적응이나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유명한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도 촘스키에 동조함에 따라 이 주장은 언어학계와 생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여러 방면에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수 새비지 럼버는 침팬지와 닮은 유인원인 보노보에게 언어를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칸지'라는 이름의 그 보노보는 사람처럼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그림 키보드로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칸지는 앵무새처럼 문장을 외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어를 조합해서 만든 문장도 정확하게 이해했다. 또 거짓말로 동료를 속이는 장난까지 쳤다.
럼버의 연구는 인간에게만 언어가 있다는 정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한편,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와 폴 블룸은 인간에게 '보편문법'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언어가 복잡하다는 점 때문에 언어가 적응이나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의 신체 가운데 눈은 특히 복잡한 기관이지만, 그래도 눈이 진화했다는 것은 분명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교했다.
언어학자 필립 리버만은 좀 더 과격하다. 그는 언어는 전적으로 진화와 적응의 산물이며, 인간이 일종의 문법적 장치를 타고났다는 관념도 완전히 틀렸다고 촘스키에 대해 반박한다.
그는 신체의 운동과 사고를 관장하는 뇌의 '기저핵'이 손상된 사람들은 움직임과 사고의 이상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거나 말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움직임과 사고, 언어는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능력이며, 움직임과 사고처럼 언어도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들의 의견과 다른 의견들을 종합해 언어는 부분적으로 선천적이고 고유한 것임이 분명하지만, 유전자 하나에 새겨진 정보라기보다는 여러 유전적 성질이 복합된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린다.
동물들에게 인간과 같은 언어가 없는 것은 특정 유전자 하나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과 같은 문화가 없어서 '할 말'의 종류가 많지 않기 때문이며, 동물들에게도 인간의 것과는 다르지만 그들 나름의 '언어'는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인도에서 자란 아기들의 언어에 대한 질문에 학자들은 다들 어떻게 대답하고 있을까? 이 책의 에필로그는 이 질문에 대한 학자들의 답을 수록하고 있다. 필립 리버만은 언어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답한 반면, 스티븐 핑커와 폴 블룸은 이들은 기초적인 언어를 만들어낼 것이며 세대가 갈수록 언어는 점점 진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질문에 대한 촘스키의 답변은 이 책에 실려 있지 않지만, 그 역시 '보편문법'을 강조하며 이들이 언어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대답할 것으로 보인다.
전소영 옮김. 492쪽. 2만8천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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