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툭툭 튀어나온 개성적 시도들
많은 도전이 눈에 띈다.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좋은 장르인 뮤지컬에 스릴러라는 음침한 의상을 입혔다. 공연에서는 연인 성아의 살인 혐의를 받는 경민과 쌍둥이 동생 정아의 이야기가 시종 긴장감 있게 흐른다. 흔히 하는 화려한 커튼콜도 없다. 그러나 묵묵하게 밀고 나간 이 색깔은 일관성 있게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공연의 말미에 적막 대신 화려한 곡을 터뜨렸다면 쌍둥이 자매의 미스터리에서 오는 재미는 반감됐을 것이다. 이 작품은 책장의 마지막에 느낌표가 아닌 말줄임표를 놓아 스릴러라는 장르성을 살렸다. 모든 디테일을 배제하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택한 회색 벽뿐인 무대와 수미상관(처음의 구조를 끝에 다시 반복하는 것)의 극 구조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사실 연극에 더 적합할 듯한 이야기를 뮤지컬로 바꿔놓은 시도 곳곳에는 위태로운 줄타기가 보인다. 재미와 긴장이 툭툭 튀어나온 채 자기 목소리만 낸다. 고르게 줄서기 하지 못한 장면들은 기억에 깔깔하게 남는다. “저기 소(牛)가, 소가. 속아 넘어갔지?”, “그대가 천사가 아니라면 나에게 번호를 주세요”, “오빠 믿지? 손만 잡고 자자”와 같은 신파적 대사의 향연이 그러하다. 앞 뒤 재지 않고 화를 내는 경찰, 자신 곁에 있으면 다 불행해 진다는 동생의 감정선은 매끄럽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첫 장면에서 판결을 내리는 소리의 울림은 약간 과도한 감이 있어 만화영화에서 악당이 출연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거친 시도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긴장감 어린 묘기로 바꾸는 것은 바로 음악이다.
- 박용전 연출만의 밴드음에 파묻히다
이런 투박한 선들은 극작, 작곡까지 모두 도맡아 해내는 박용전 연출만의 힘에 의해 훌륭하게 뮤지컬의 복색을 입는다. 귀에 잘 스미는 멜로디는 감탄스럽다. 밴드색이 물씬 풍기는 음악은 스토리를 끌어간다기보다는 콘서트처럼 감정을 펼친다. 한 곡 한 곡이 호소력 있게 빛난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불협화음이나 단조 등으로 스릴러의 색을 잊지 않는다. 곡은 이렇게 훌륭하게 일관성을 가지며 스토리에 안착한다.
‘오디션’에서도 빛났던 이승현의 발성은 이러한 곡에 딱 들어맞는다. 성악 발성이나 진성을 택하지 않고 독특한 질감의 가성을 쓰는 그는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저음에서 갑자기 가는 고음으로 치닫거나 흐느끼는 느낌의 클라이맥스가 그러하다. 다른 배우들 역시 곡을 훌륭히 소화한다. 이러한 음악은 툭툭 튀어나온 투박한 부분들에 대해 눈감게 한다. 음악 속에서 극의 거칠음은 개성으로 승화된다.
뮤지컬 ‘누가 내 언니를 죽였나’를 단순히 밴드음악을 잘 쓰는 창작자의 신작이라고 평하기엔 아쉽다. 밴드 뮤지컬, 락 뮤지컬 외에 박용전 연출만의 색이 있기 때문이다. 박용전 연출은 개성적이고 거친 요소들을 스릴러라는 쉽지 않은 색깔로 어레인지하는 훌륭한 밴드 리더다. 그리고 그의 이번 작품은 독특하고 강렬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락밴드의 성격을 물씬 가졌다.
[뉴스테이지=백수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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