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만드는신문=류가람 기자] "소비자가 깨어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 "더 이상 소비자의 불만이 투정이 되지 않게 만든다."
이는 공중파 TV의 대표적인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KBS와 MBC PD들의 야심찬 제작 목표다.
그동안 소비자는 가장 핵심적인 경제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 제조∙유통 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일부 업체들의 횡포에 휘둘리며 사후처리마저 구걸하듯 얻어왔다.
그러나 지난 2006년 9월 날카로운 소비자의 시각으로 문제점을 다루는 지상파 TV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시사 프로그램이나 경제 프로그램의 '양념'격으로 가끔 다뤄지던 소비자 고발이 지상파 TV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등장하면서 기업들의 방만한 소비자 관리에 경종을 울렸고 소비자들에게는 권리의식을 고양시킨 것. MBC '불만제로'(채환규PD. 수요일 오후 6시 50분)와 KBS '소비자 고발'(최석순PD. 수요일 밤 11시 5분)이 양대 산맥을 이루며 우리나라 소비자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의 사회적 반향성이 높아지면서 지난 2008년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꼽은 10대 히트상품으로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이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국내 최초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으로 2006년 9월28일 첫방송을 쏘아 올린 MBC '불만제로'는 그해 10월 10일 역시 국내 최초의 소비자고발 전문 인터넷신문으로 출범한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과 맞물려 소비자 고발을 저널리즘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불만제로'와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정식 업무제휴를 맺고 콘텐츠 제휴등으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깐깐한 소비자가 정직한 생산자를 만든다'
선발 주자인 '불만제로'는 초기 기획단계에만 6개월이란 긴 시간이 소요됐다. 현재 채환규PD를 중심으로 32명의 제작진이 발빠른 보도를 위해 뛰고 있다.
'불만제로' 보다 7개월 여쯤 늦은 2007년 5월 4일 출범한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은 최석순PD를 중심으로 12명의 PD들을 포함한 30명의 제작진이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다.2009년 9월 16일까지 총 113회분이 방송됐다.
두 프로그램 모두 제대로 된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대변한다는 동일한 의도로 기획됐다.
'불만제로' 채환규PD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투정으로 치부되는 현실 속에서 고발프로그램의 기획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밝혔고 '소비자 고발' 최덕순 PD 또한 "깐깐한 소비자들이 정직한 생산자를 만든다. 소비자가 깨어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강한의지를 표했다.
두 PD 모두 제보에 의지하기보다는 '제작진 모두가 소비자'라는 생각에서 아이템을 발굴한다고 밝혔다.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한 의문점들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고민-분석-조사-실험'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템을 선정한다. 물론 자체적으로 접수하는 소비자들의 제보는 큰 힘이 된다. 특히 내부 제보자들의 양심 선언은 몇번에 걸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그러나 그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지 않다.
최PD는 "내부 고발자의 도움이 크지만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벽"이라며 "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자장면'방송의 경우 끔찍한 음식을 제조및 판매에 양심적 가책을 느낀 배달원의 고발이 바탕이 됐지만 이후 제보자가 별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 방송이후 사회적 파장, 관련업계 '들썩'
이처럼 발로 뛰며 제작된 방송들은 방영 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불만제로의 '불량 보일러' 방송 이후 관련 업체들은 5만 여대의 보일러를 무상으로 교체해주는 개가을 거뒀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00억에 가까운 큰 금액. 또한 '인터넷상의 부동산과 자동차 판매 문제점'에 대한 방송 이후에는 공정거래 위원회는 새로운 법규를 만들기도 했다.
소비자 고발의 '베이비파우더'는 설마하는 생각에 잠시 보류된 기획이었으나 전수영PD의 끈질긴 취재 노력으로 완성되어 소비자들에게 놀라운 정보를 제공했다.
방송의 영향력이 막강한만큼 업체와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취재가 시작된 것을 아는 순간부터 방송금지가처분,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등의 협박이 줄을 잇는다. 실제로 소송으로 제작진이 곤욕을 치룬 사례도 많다.
◆ '3D'업종 PD찾기, 하늘의 별따기
해당 프로그램들을 '고발' 프로그램이라는 특수한 성격 탓에 방송국내에서도 '3D프로'로 일컬어지면 PD들 사이에서 기피대상 1위에 꼽힌다.
불만제로의 '세제곱창'을 취재한 조윤미PD는 4개월에 걸친 잠복근무를 하며 아침마다 순대국밥을 먹었다. 그동안 단골손님이라고 각별히 챙겨줬던 주인아주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의 짐이됐지만 방송을 위해 외면해야 했다.
소비자 고발의 '개고기'편을 취재한 이자영PD는 촬영 중 개에 물리는 바람에 아직도 등에 상처가 남아있다.
뿐만 아니다. '쓰레기 솜'취재 기간에는 온 사무실이 솜뭉치로 가득 찼고 현재는 취재중인 '홍어' 때문에 사무실 입구부터 홍어냄새로 코를 찌른다.상황이 이러하다보니 PD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최PD는 "이번 가을 개편 때는 어디서 PD들을 납치해 와야 할 정도"라며 제작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두 책임 프로듀서에게 상대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채PD는 "'소비자 고발'은 현장을 취재한 PD들이 직접 출연하다보니 차분하고 전문적인 진행이 장점"이라고 칭찬했고 최PD는 "소비자고발이 전문진행자가 아닌 PD들의 출연으로 다소 부자연스럽고 딱딱하다면 '불만제로'는 전문 MC들이 진행해, 소프트하고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화답했다.
두 PD모두 "경쟁관계가 아니라 우리나라 소비자 문제를 진일보시키는데 서로 상생하며 발전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이어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소비활동 개선과 업체들의 투명한 경영을 위해 힘쓸 것이다. 그에 앞서 소비자들의 인식이 깨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