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백진주 기자] 자동응답전화(ARS)가 소비자들의 돈 먹는 하마로 변하고 있다. 일반 전화요금보다 비싼 요금을 물리면서 복잡한 메뉴로 많은 통화시간을 유발해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있다. 더욱이 많은 소비자들가 ARS가 이전 무료였던 '080'에서 진화한 공짜 전화라고 생각해 별 부담 없이 사용하는 점도 요금 바가지가 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민의 민원 신고를 받는 정부기관들조차 속속 유료 ARS로 전환하고 있어 소비자들만 애꿏은 '봉'이 되고 있다
◆사라지는 080, 늘어나는 ARS
서울 구로구의 정 모(남.43세) 씨는 신용카드를 분실해 카드사 콜센터(15XX-XXXX)에 전화로 분실신고를 했다. 안내하는 대로 복잡한 메뉴를 거쳐 원하는 서비스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분. 시간이 많이 지체됐지만 전화요금은 당연히 카드사가 지불한다고 생각해 부담 없이 분실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다음 달 휴대전화 사용요금을 확인해 보니 ARS요금 435원이 부과돼 있었다. 내역을 알아보니 카드분실신고를 할 때 든 비용이었던 것.
정 씨는 "소액이지만 이런 식으로 고객센터나 콜센터에 전화하는 일이 종종 있어 부담이 적지 않다. 무료인 줄 알았는데 결국 내게서 나가는 돈이었다니 황당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기업 고객센터, 은행, 카드사 등의 민원 업무 부서와 콜센터의 전화번호가 모두 15XX, 16XX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료였던 '080'이 사라지고 이 자리를 유료 ARS가 잽싸게 메워가는 것.
소비자들이 전화를 가장 많이 하는 카드사의 경우 주요 10개사의 콜센터 번호가 모두 '15XX' 번이다. 꽃배달이나 홈쇼핑 등 일부 주문전화에 한해 080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각 정부기관마저 유료 ARS로 속속 교체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정보나 철도청의 열차안내, 국세청의 홈텍스등이 대표적이다.
국민의 신고를 기다리는 가축질병 발생전화, 원산지표시 위반 신고전화, 선거법 위반 신고전화, 탈세 신고전화 등도 유료 ARS로 전환됐다. 공익적 목적의 전화까지 소비자가 자비를 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하루에도 문의전화가 수십만 통씩 쏟아져 080을 운용할 경우 월 50~60억원, 1년이면 웬만한 기업 한해 순익과 맞먹는 600억~7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기업의 경영논리에 의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몽땅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무료인줄 알았는데.."
현재 유료 ARS번호는 총 8가지다. 이 중 1588 1577은 KT가, 1544 1644는 LG데이콤이 1566, 1600은 SK브로드밴드, 1688은 온세텔레콤, 1599는 SK텔링크 등 5개 사업자가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이런 ARS전화를 무료로 인식하는 것. 예전의 080번호가 길어서 인식하기 편하게 축약했다고 오인하고 있다.
또 일부 기업들은 ARS전화 번호 앞에 '무료 상담' '무료안내'라고 기재해 소비자들의 착각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통화요금이 무료라는 뜻이 아니라 상담이나 안내가 무료라는 것인데 기업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 소비자들은 부담 없이 통화버튼을 누르게 된다.
◆복잡한 메뉴는 시간끌기용?
일반적으로 ARS 대표번호의 경우 유선전화 시내요금은 180초 이용 시 39원(표준), 이동전화는 10초당 14.5원(주간)이 부과된다. 일반 전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대표전화라서 가장 가까운 영업점으로 연결되다보니까 영업점이 가까이 없는 경우 시외 영업점으로 연결돼 시외전화요금이 부과된다.
시외로 연결될 경우에 미리 고지가 되지만 볼일이 있어 전화를 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시외라고 해서 끊을 수는 없는 노릇. '울며 겨자 먹기'로 바가지 폭폭 쓰며 이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 경비 절감을 이유로 기업들이 콜센터를 지방으로 속속 이전하면서 시외 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소비자들에게는 일절 배려가 없다.
또 이들 ARS는 대부분 자동응답으로 돼 있어 자신이 원하는 부분의 상담이 이뤄지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전화를 걸면 기업의 홍보용 멘트나 CF가 나온다. 소비자는 돈을 들여 광고를 들어주는 셈이 되는 것. 다 듣고 나면 원하는 메뉴를 누르라고 하며 장황한 설명이 나온다.
이렇게 여러 메뉴를 수도 없이 누르고 한 번이라도 잘못 누르게 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다 해서 들어가면 상담원은 마지막에 연결되지만 그것마저 "상담원이 모두 통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라는 말로 시간을 잡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통화를 다 끝내고 나면 기본 4~5분, 길면 한 시간도 넘게 전화를 붙잡고 있게 된다. 물론 요금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