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의 잔혹한 사건인 이른바 ‘나영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가운데 중증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소녀의 성폭행 피해사례가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제 2의 나영이 사건으로 명명되는 ‘은지 사건’은 지난 9월 30일 인터넷 포털 다음의 토론 게시판 ‘아고라’에는 ‘성범죄없는 나라’라는 닉네임을 쓴 한 네티즌이 ‘나영이를 보고... 성폭 당한 제자 돕다 지쳐 있는 초등교사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면서 촉발됐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게 수치스럽다” “다른 세상 얘기를 보는 것 같다. 성폭행 범죄가 이렇게도 심각한줄 몰랐다”며 공감 댓글을 수없이 올리고 있다.
네티즌들은 ‘제2의 나영이 사건’ ‘은지 사건’이라고 명명하며 경찰의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우리 은지를 지켜주세요’라는 네티즌 서명을 제안, 5일 오후 3시15분 현재 6107명이 서명했다.
그는 "은지의 성폭행 사건도 나영이 사건 못지않게 충격적이고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지만 용의자들에 대한 성폭행 혐의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현재까지 흐지부지해진 상태"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게시글에 따르면 은지사건은 8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지적장애인인 엄마, 남동생과 함께 포항 인근의 외딴 시골마을에서 살던 은지 양(12)이 2006년부터 2년 동안 동네 아저씨, 중고 남학생 등 5~6명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다.
가해자 중 40대 버스 운전기사는 은지와 은지 엄마를 동시에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 사건은 2008년 6월 KBS ‘추적 60분’에 소개됐으나 크게 이슈화되지 못했다가 최근 아동성폭행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드러났다.
문제의 사건을 폭로한 은지의 담임교사인 경북 포항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태선 씨는 글을 통해 “2008년 초부터 성폭행 당한 반 아이를 돕다가 너무나 허술한 사회 안전망과 무관심에 절망을 느껴 삶의 의욕마저도 꺾여 가는 초등교사”라며 “오늘도 친아버지에게 10살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폭을 당하고 있는 여중생을 만나고 오면서 도대체 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하고 버티어야 하나 하는 심한 회의가 밀려온다”고 허탈감을 토로했다.
김 씨는 “성폭행을 당한 우리 반 아이를 보호하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다했다”며 “여성회, 아동보호센터, 경찰서, 각종 성상담소, 해바라기 아동센터, 전교조, 참학, 장애인 부모 연대 등등 심지어는 창원에서 열린 세계 인권대회도 가서 이런 성범죄에 대해 중요 사명을 띤 여성단체들도 만나보고 청와대에 민원도 올리고, 방송까지 나왔지만 해결이 안됐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지적장애인 모녀가 성폭행을 당하고도 보호받지 못했다는 글이 네티즌을 중심으로 파문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수사향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할 경찰은 2009년 이 사건을 신고 받고 수사에 착수해 모녀를 함께 성폭행한 40대 운전기사 1명을 구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5∼6명에 대해 피해자와 대면조사 등을 실시했으나 성폭행 혐의를 밝혀내지 못한 채 수사가 흐지부지한 상태에 놓여 있다.
경찰은 피해자가 인지능력 부족으로 가해자를 식별해 내지 못하고 당사자들도 부인하고 있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경찰은 '나영이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을 근절시킨다는 방침을 세우고 조만간 당시 가해자들을 상대로 재수사에 들어갈 계획이다.<사진-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 캡처, kbs추적6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