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앉아있는 중년 여인도 오른쪽 사내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와 발에서부터 목 위까지 몸을 감싸고 있는 하얀 실내복은 그녀를 한층 정숙한 여인으로 비춰지게 한다. 하지만 그녀 옆에 서 있는 중년 사내의 표정은 사뭇 심각하다. 말쑥한 실내복 차림에 훤칠한 외모, 중후한 수염으로 보아 꽤나 멋쟁이일 것 같은 이 사내. 그렇지만 자신을 빼 닮은 듯한 오른쪽 사내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엿보인다.
이들 너머 정면으로 크게 나있는 창 뒤에는 자욱한 안개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모습은 마치 환영처럼 느껴진다. 안개는 이들의 행동을 연출하고 조작하는 듯 보인다. 도통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농도 짙은 안개는 이들의 공간을 휘감은 채 자리하고 있다.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사라지지 않는 안개와 사라질듯 계속 울려 퍼지는 무적 소리 위로 들려오는 이 가족들의 대화는 관객들의 신경을 끊임없이 곤두세우게 한다. 수많은 상처와 갈등으로 얼룩진 가정이라는 공간. 그 실체를 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낸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는 오는 9월 18일부터 10월 1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박소연 기자]
저작권자 ©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