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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연극 ‘마라,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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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연극 ‘마라, 사드’
발랄한 음악극으로 돌아오다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9.10.14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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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라, 사드’는 어렵다. 혁명이니 개혁이니 하는 어려운 말들이 쏟아진다. 작품의 대본을 봐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시놉시스는 간단명료하다.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코르데’란 이름의 시골 처녀가 급진적인 혁명가이며 이론가인 장 폴 마라를 살해한다. 이 단 한 문장이면 족한 연극 ‘마라, 사드’의 이야기는 그러나 쉽게 끝나지 않는다. 급진적 개혁주의자인 장 폴 마라, 그리고 그의 대각선 반대편에 서 있는 냉소적 허무주의자 사드. 이들은 9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끝나지 않는 논쟁을 벌인다. 이 논쟁은 관객들의 표결에 의해 마무리된다. 붉은색의 마라, 검정색의 사드. 관객들은 작품의 결말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연극 ‘마라, 사드’의 원제는 ‘사드씨의 지도하에 샤랑통 병원의 연극반이 공연한 장 폴 마라에 대한 박해와 암살’이다. 다소 장황하게 긴 이 제목은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어떨 것이다’하는 상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드라는 인물이 샤랑통 정신병원에 입원해있을 당시 환자들을 데리고 공연을 자주 올렸다는 한 가지 사실과, 프랑스 혁명 당시 개혁의 선봉에서 민중들을 주도했던 마라가 피터 바이스라는 독일 작가에 의해 허구 속에서 극적으로 만난 것이다. 마라는 혁명을 위해서라면 피흘림도 마다하지 않는다. 피부병에 걸려 평생을 치료용 욕조 속에서 보내야했음에도 그는 민중들을 향한 혁명의 선언문을 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반면 사드는 그러한 혁명 역시 변질됐다고 말하는 허무주의에 가깝다. 연극은 팽팽하게 맞서는 이 둘의 주장을 정신병원이라는 특정 공간에 놓음으로써 ‘혁명’이 갖는 집단적 광기와 폭력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기면증, 편집증, 성도착증 등 다양한 정신 병력을 갖고 있는 환자들은 극중극을 만들면서도 때때로 흥분과 무절제함으로 연극의 흐름을 끊어 놓기 일쑤다.

관객들의 투표로 결말이 만들어지는 만큼 변수는 그날 관객들의 취향과 성향이다. 마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혁명의 찬가로, 사드를 지지하는 관객들이 많으면 원작대로 작품은 흘러간다. 연극이 주는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입장에서 벗어나, 카드를 들고 ‘블랙이냐 레드냐’를 고민하는 순간 관객들은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소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었던 연극 ‘마라, 사드’는 이렇듯 관객참여와 ‘음악극’의 도입으로 혁명을 발랄하고 경쾌하게 이야기한다. 무대 한 쪽을 높게 쌓은 벽 위에는 세 명의 밴드가 앉아있다. 그들은 음악인으로서 참여한 게 아니라 반주를 하면서도 동시에 연극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캐릭터로서 존재한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정신병자역의 의상까지 갖춘 그들은 연극 ‘마라, 사드’ 속 영락없는 배우다.

남명렬, 홍원기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출연으로 더욱 볼만한 극단 풍경의 연극 ‘마라, 사드’는 오는 10월 18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최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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