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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명적인 관계! 연극 ‘뷰티퀸’,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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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명적인 관계! 연극 ‘뷰티퀸’, ‘에이미’
엄마에게서 벗어나려는 딸들의 몸부림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02.1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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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맨발로 언 강을 건너는 기분이다. 칼보다 날카로운 시림으로 인해 발바닥에서는 보이지 않는 피가 흘러나온다. 찬바람에 터져버린 발등 따위는 아랑곳없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남은 것은 핏자국뿐이다. 발밑의 얼음은 아직 단단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작은 균열들이 감춰져있다. 언제 깨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어붙은 강 위를 맨발로 걷는 아슬아슬함의 공포가 몸을 떨게 만든다. 단단하다고 믿는 삶의 균열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위태롭게 걷고 있는 그들은 누구인가. 발바닥이 아파 발등도 자기 것임을 모르고 하염없이 외면하기만 하는 그녀들은 누구인가. 이토록 차갑고 섬뜩할 수밖에 없는 모녀들. 여기 엄마와 딸이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는 칼을 겨누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따뜻한 햇살 한줌과 작은 온기마저도 없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 엄마는 절대 죽지 않는다, 연극 ‘뷰티퀸’


연극 ‘뷰티퀸’의 매그와 모린은 상대를 서서히 죽이기 위해 생을 부여잡고 있는 것처럼 불행하기만하다. 한때 뷰티퀸이었던 모린은 나이 사십이 되도록 남자경험도 없이 늙은 엄마와 살고 있다. 모린은 말한다. “엄마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영원히 버티고 있을 거야. 날 괴롭히기 위해서.” 이것이 엄마 매그를 향한 딸 모린의 진심이다. 나이 사십 먹은 딸을 움켜쥐고 있는 70세 매그도 보통은 아니다. 제 몸 가눌 기력조차 없으면서 엄청난 힘으로 딸의 삶을 조종하고 있다. “난 절대 안 죽어. 일흔 살이 돼서야 내 장례식을 치르게 될 걸. 그때 스킨냄새를 풍기며 네 허리에 팔을 두를 남자가 몇이나 있겠니?” 지금 딸 모린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는 것은 멋진 남자가 아니다. 매그의 냄새나는 오줌과 구역질로 채워진 시간들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저주를 퍼붓지만 정작 두려운 것은 그들의 침묵이다. 침묵할 때 그곳에는 입을 다물게 한 증오가 도사리고 있다. 증오의 침묵이 부유하던 일상에 딸의 옛날 친구 파토가 등장하고, 이제 보이지 않던 균열은 뱀처럼 굵은 비열함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모린과 파토가 감정을 키워가는 사이 매그의 집착과 광기는 극에 달한다. 딸이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떠날까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둘을 갈라놓는다. 애처로울 만큼 필사적이다. 희생과 사랑으로 이뤄진 모녀는 애초에 없었다.


- 엄마는 엄마를 낳는다, 연극 ‘에이미’


경제적으로 낙후된 아일랜드의 리넨에서 모린과 매그가 서로에게 독설을 퍼붓는 사이, 영국의 우아한 저택에 사는 여배우 에스메와 그의 딸 에이미는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것이 유지된 것도 역시 에이미의 애인 도미닉이 나타나지 전까지다. 연극 ‘에이미’는 에스메와 도미닉의 갈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서로를 경멸한다. 변하기만 하는 세상을 외면하고 연극의 고귀함만을 찬양하는 에스메와, 낡고 죽은 것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에스메를 조롱하는 도미닉. 이들은 처음부터 충돌했다. 그렇다면 왜 에이미인가. 이 갈등을 완화시키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 에이미의 시선 속에 들어있다. 그녀가 말하는 낡은 사랑과 이해, 그리고 평화가 사실은 답임을 모르지 않는다.


도미닉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에스메와 상관없이 에이미와 도미닉은 결혼을 한다. 도미닉은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여배우와 염문을 뿌리며 화젯거리가 된다. 그러나 에이미는 에스메를 찾아오지 않는다. 에스메가 걱정할까봐? 어두워진 표정을 보고 오열할까봐? 아니다. 에스메가 옳았다는 것, 그녀가 정답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다. 그 힘으로 고통의 시간을 홀로 견디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너무 몰랐다.


매그와 모린, 에스메와 에이미는 환상과 안식으로 가득찬 모녀의 보편적 이미지에 돌이킬 수 없는 금을 그어버린다. 딸은 엄마를 경멸했다. 그녀의 삶에 구역질을 느꼈다. 그 아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 결과는 자멸이다. 시간이 흐르고 도미닉은 화해하기 위해 에스메가 있는 작은 분장실을 찾는다. 그곳에 에이미는 없다. 모린은 분노로 매그를 살해하고 새로운 삶을 살 것처럼 엄마의 흔적들을 정리한다. 그러나 결국 매그가 늘 앉아있던 의자에 앉아 흐느낀다. 모린은 매그를 죽이고 스스로 매그가 돼 가고 있었다. 비뚤어진 사랑 방식 끝에 남은 것은 고독과 애증의 그림자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림자가 조롱의 웃음을 내비치며 서 있다.


(뉴스테이지=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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