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배우 하정우에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윤종빈 감독이 중앙대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던 이 영화가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되자 영화계는 겁없는 감독과 배우들의 출현에 화들짝 놀랐다. 주연배우 하정우에게 관심이 집중됐던 건 당연한 일.
그가 한국의 나우필름과 미국 VOX 3FILMS가 합작해 만든 영화 '두 번째 사랑'(영어제목:Never Forever, 21일 개봉)의 주연이 된 것도 '용서받지 못한 자' 때문이었다.
단편영화로 미국에서 주목받았으며 하버드대에서 영화 관련 과목 강의를 하던 김진아 감독이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강권으로 유일하게 봤던 작품이 '용서받지 못한 자'였고, 그때 이미 '두 번째 사랑'의 지하 역으로 찍었다.
하정우는 "아마 '용서받지 못한 자'의 태정이나 '두 번째 사랑'의 지하나 모두 불안정한 인물이라는 점이 비슷하지 않을까"라면서 "태정이도 방황을 숨기며 아닌 척하는 인물이고 지하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늘 불안해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두 번째 사랑'은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이민 2세 남편을 둔 소피는 아이를 갖는 게 꿈이다. 기도를 강요하는 한국인 시어머니, 여전히 사랑하지만 점점 더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남편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는데 아이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다.
병원에서 남편과 꼭 닮은 지하를 만난다.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데려오려는 지하는 불법체류자여서 정자조차도 기증하지 못하는 신세. 둘은 한 번에 300달러, 임신할 경우 3만 달러라는 계약을 맺고 관계를 나누다 결국 진짜 '두 번째 사랑'에 빠져버린다.
"연기라고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상황극을 하듯이 '내가 지하라면'이라는 마음으로 제가 느낀 대로 했죠. 감독님도 그걸 바라셨구요. 자유롭게 연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두 번째 사랑'을 "붉은색을 더 붉은색으로 보이게 하는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위험하고 감수해야 할 게 많지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두 번째 사랑'에는 '디파티드'의 유일한 여배우였던 베라 파미가가 출연한다. '디파티드' 출연으로 한국에서도 인지도를 높였지만 베라 파미가는 이미 할리우드에서 주목하고 있던 배우.
"편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외국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배우였습니다." 베라 파미가에 대한 그의 느낌이다.
지하를 철저히 소피의 상대 개념으로만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의 연기도 베라 파미가의 연기에 따라 달라졌다. 베라 파미가가 표현하는 감정에 따라 그의 연기도 맞춰졌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인종도 다르고, 나라도 다른 두 배우의 앙상블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학 때 어학연수를 했던 게 영화를 찍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의 영어 실력은 낯선 땅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남자를 표현하는 데 딱 알맞았다. 촬영장을 편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
"더 공부해야죠. 어학이라는 게 끝이 없으니까요."
그는 한국과 미국의 영화 촬영장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촬영장 풍경이나 일하는 방식은 비슷해요. 낯선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막상 부딪혀보니 오히려 덜하더군요. 스태프들의 열정과 즐기면서 일하는 모습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를 꽤 잘하는 데다 베라 파미가의 격려와 칭찬, 김진아 감독을 비롯한 현지 영화인들의 추천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리고 하정우 역시 언젠가 할리우드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당연히"라는 전제 하에 "아직은 배워야 할 게 많으니까 열심히 하다보면 딱 떨어지는 기회가 오지 않겠나"라고 말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쉼없이 달렸다. 김기덕 감독의 '시간'과 '숨'에 연이어 출연했으며, 영화 '구미호 가족'을 찍은 직후인 지난해 7월 미국에 가 '두 번째 사랑'을 찍었다. 드라마 '히트'는 그의 대중적 인기를 높인 작품. 올해 두 편의 영화를 더 찍을 계획이다.
"늦게 데뷔한 만큼 당분간은 '다작'이 돼야죠."
얼마전 영화 전문지 '씨네 21'이 선정한 영화 관련 전문집단 설문조사에서 '앞으로 가능성이 큰 배우' 부문 1위에 올랐다. 가능성을 인정받은 한편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그가 한편 한편씩 이뤄낼 지점에 관심이 간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물었다. "아직 신인급인데 베드신이 걱정되지 않았느냐"고.
거침없는 그의 답변. "전혀요. 제가 이미지, 이런 거 신경 써선 안되는 때잖아요."(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