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광진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5일 오전 9시께 이모씨는 낯선 남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 남자는 "○○군의 아버지가 맞느냐. 아들을 데리고 있다"고 말한뒤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걸려온 두 번째 전화에서는 고등학생인 이씨 아들과 비슷한 목소리의 학생이 "아빠! 무서워.. 살려줘"라며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범인은 이 때부터 수시로 전화를 걸어 "돈을 준비하라, 은행으로 가라, 계좌로 입금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씨는 아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찰에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 은행 앞에서 전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광진경찰서 고현정(30) 경장이 은행 주차장에 차를 세우다 다급한 모습의 이씨를 발견했다.
고 경장은 은행 현관에서 이씨가 당황한 표정으로 전화를 하면서 현금출금기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고 "입금하는 대로 아들 목소리를 듣게 해달라"는 통화내용을 듣게 됐다.
순간 납치사건임을 직감한 고 경장은 통화 중인 이씨에게 다가가 "경찰입니다. 납치전화를 받으셨나요?"란 메모를 건넸고 이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 경장은 다시 "시간을 최대한 끌어보라"는 메모를 보여주며 이씨에게 아들의 이름, 학교를 물었고 이씨가 떨리는 손으로 적어 준 아들의 인적사항을 갖고 학교에 연락해 이씨 아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협박범이 사기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고 경장은 "이씨 아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금을 멈추라고 외쳤지만 이미 500만원을 이체하는 확인 버튼을 누른 뒤였다"며 "그러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학생의 아버지가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송금이 되지 않았고 피해액도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런 사연은 최근 이씨가 고 경장에게 감사한다는 사연을 경찰서에 보내면서 알려졌다.
이씨는 "근무시간도 아니었는데 극도의 공포 속에 떨던 사람을 구해 준 고 경장에게 감사 드린다. 고 경장이 진정한 경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 경장은 "이씨의 통화를 우연히 듣게 돼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일 뿐"이라며 "전화 사기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의심스러운 전화가 오면 우선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