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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 소송 이창희 회장 유가족 행보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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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 소송 이창희 회장 유가족 행보 엇갈려
  • 유성용 기자 soom2yong@csnews.co.kr
  • 승인 2012.03.29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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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소송을 제기한 이병철 창업주의 차남 고 이창희 새한미디어 회장 가족의 행보가 엇갈려 관심을 낳고 있다.


차남인 이재찬 씨의 부인인 최선희씨가 1천억원대 소송을 냈지만 최 씨보다 상속 권리가 높은 이창희 회장의 부인 이영자씨와 장남 이재관씨는 소송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 삼성가의 상속 소송이 갈수록 묘한 양상을 띠고 있다.

28일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1천억원대 상속 소송을 제기한 최선희 씨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인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의 아들인  고 이재찬 씨(사진)의 부인이다. 재찬 씨는 2010년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투신 자살했다.

이에 따라 이건희 회장에게 제기된 상속 소송액은 이맹희 회장 7천억원 이숙희 씨 1천900억원 등 총 1조원에 육박하게 됐다.

반면 고 이창희 회장의 부인 이영자 씨와 장남 이재관 씨는 "선대 회장의 유산문제는 이미 다 정리됐다"며 소송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29일 밝혔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가 이 회장 사후 그간 이들을 특별히 챙겨왔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이 앞서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차남인 재찬 씨 가족은 새한가문과 떨어져 소원한 채로 지내다 느닷없이 이번 소송에 가담한 모양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973년 삼성그룹에서 분가한 새한은 삼성가 계열분리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했다.

한솔그룹은 비록 30위권 밖에 밀려있긴 하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CJ는 계열사 65개를 거느리며 재계 서열 16위에 올라있다. 신세계 역시 18위로 재계의 한축으로 자리잡았다.

새한그룹은 분가 후 1998년 재계서열 30위에 올랐으며 이듬해인 1999년에는 25위의 중견그룹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2000년 27위로 하락한 뒤 이후 30대 그룹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새한그룹 고 이창희 전 회장은 삼성가에서 '비운의 황태자'로 불렸다. 이 전 회장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 이영자 씨와 연애결혼했다. 1966년에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했으며 부친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끝내 신임을 받지 못한 채 삼성을 떠나 새한미디어를 세웠다.

이후 1991년 이창희 회장은 58세의 이른 나이로 미국에서 혈액암으로 작고했고 장남인 이재관 씨가 삼성가의 제일합섬 지분을 넘겨받아 1995년 삼성그룹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새한그룹을 맡았다.

2세 경영이 시작됐지만 새한그룹의 비극은 계속됐다. 대대적인 기업 확장 및 시설투자에 나섰으나 시대의 흐름을 잘 못 읽은 탓에 경쟁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그룹의 주력이었던 새한(옛 제일합섬)은 1990년대 중반 1조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섬유 필름 등 일부 사업부를 떼 내야 했다.

새한미디어 역시 대규모 시설투자에 나섰으나 테이프 산업의 사양화로 부실을 키웠다. 결국 새한그룹은 2000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채권단으로 경영권을 넘겨야 했다.

2003년에는 분식회계 사기 불법배당 등의 혐의로 이재관 전 부회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그룹은 매각과 청산 등의 절차로 해체됐다.

사실 이창희 회장은 새한을 차리고 재기를 꿈꾸면서 작고하기 전까지 삼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고 후에도 홍라희 여사는 그의 유가족들을 계속 챙겨왔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 회장 사후에 아들 재관 씨가 이끌던 새한그룹이 어려움에 처했고 외환위기의 극심한 경제난으로 당시 누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했다. 삼성 역시 자동차 사업 실패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결국 2010년 둘째아들 재찬 씨는 재벌가의 일원으로서 살다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이를 비관해 자살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실제로 재찬 씨는 집주변 세탁소 등 가게에 수십만원의 외상값을 갚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새한미디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에는 삼성가와 이렇다 할 교류 없이 지내며 외로운 생활을 이어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제로 삼성이 새한가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 한 때 재계의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재찬 씨 장례식 역시 삼성가 식구들이 얼굴을 비추지 않아 이목을 끌었다.

이재찬 씨는 워크아웃 이후 새한그룹을 떠나 엔터테인먼트 사업 분야에서 주로 일을 해왔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 선희 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두 명을 뒀으나 부인과는 상당기간 별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금전적이고 인간적인 문제들로 인해 재찬 씨 유가족들은 평소 서운한 감정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라며 "이맹희 씨 이숙희 씨 소송 소식을 듣고 동참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8일 법무법인 화우에 따르면 재찬 씨의 부인인 최선희 씨와 아들 준호 성호군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1천억원대의 주식을 인도해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이 선대회장으로부터 차명으로 재산을 상속 받아 단독 관리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이맹희 씨와 숙희 씨가 제기한 소송을 계기로 자신들의 상속권이 침해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화우는 이 사건을 이맹희 씨와 숙희 씨의 사건과 병합 신청할 예정이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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