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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 3대 가업 잇는 박현준씨 "서민 음식 재조명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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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 3대 가업 잇는 박현준씨 "서민 음식 재조명됐으면..."
  • 임민희 기자 bravo21@csnews.co.kr
  • 승인 2012.03.29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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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만 해도 고래고기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값이 싸 서민들이 즐겨 찾았지만 포획 금지로 고기구하기가 어려워진데다 거리정비 사업으로 생계형 좌판(노점) 대신 가게가 들어서면서 이제는 돈없는 사람은 구경하기 힘든 귀한 음식이 됐어요."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한편에는 '괴정집'이란 고래고기 음식점이 있다. 이곳에 오면 외할머니와 어머니 장점희(63) 씨의 뒤를 이어 3대째 고래고기 장사를 하는 박현준(39) 씨를 만날 수 있다.


박 씨는 10년 전 고래고기 노점을 하던 어머니를 돕던 것이 계기가 되어 고래고기 장사를 천직으로 삼게 됐다.

"외할머니는 1950년경 가족생계를 위해 지금의 자갈치시장이라 부르는 자갈마당에서 고래고기 좌판을 시작하셨어요. 이를 어머니가 돕다 이어받았고 지금은 제가 10년째 고래고기를 팔고 있죠."

당시 포항이나 구룡포에서는 고래고기가 돼지고기보다 흔해 서민들의 단골메뉴로 꼽혔다. 80년대에 고래고기 한접시 값은 1000원(대) 500원(중) 300원(소)이었다. 지금 고래고기 한접시(대) 값이 10만원을 호가하는 것과 비교하면 서민들이 싼값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포항, 울산, 부산, 마산 등 동남해안 지역에서는 지게에 고래고기를 잔뜩 지고 다니며 "고래고기 사이소"를 외치던 장사치가 흔했고 저렴한 냉면집은 고명으로 고래고기를 썼을 정도였다.

하지만 1986년 포경이 전면 금지된 후 고래고기는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고래고기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부산에서는 고래고기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가 배로 늘어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생계형 좌판을 했던 사람들은 포항이나 구룡포에 직접 가서 고래고기를 구해 팔아야 했다. 박 씨 어머니 역시 매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버스를 4~5번 갈아타며 고기를 힘들게 구해오곤 했다.

손가락 한마디가 잘려질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았고 2002년에는 급기야 장사를 하기 어려울 만큼 몸이 상했다. 박 씨는 몸이 아픈 어머니를 돕다가 아내와 함께 운영하던 식당을 접고 본격적으로 고래고기 판매에 뛰어들었다.

"포항 등지에서 고래를 받다 보니 종종 고래사촌 격인 돌고래나 상괭이(쇠돌고래 일종)같은 질이 떨어지는 고기도 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로부터 수년째 이어온 고기 삶는 비법을 전수 받았고 현재 밍크고래를 수협을 통한 경매절차를 거쳐 구입해 팔고 있어요."

그러나 박 씨 모자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2009년 자갈치시장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부산시가 고래고기를 팔던 노점들을 강제로 철거시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박 씨 가족은 60년 넘게 장사했던 노점을 하루아침에 잃은 후 점포구할 돈을 마련하느라 상당한 애를 먹었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괴정집은 다른 2개 업체(음식점)와 한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비싼 가게세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박 씨 외에도 자본이 딸린 상인들은 궁여지책으로 3~4명이 모여 점포를 얻어 장사를 했다. 이런 형태의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자갈치시장의 또하나의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박 씨는 무엇보다도 과거 서민들이 노점을 찾아 소주 한잔에 고래고기 한 점으로 하루 신음을 털어버렸던 풍경을 더는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불과 2년 전까지 자갈치시장에서 좌판으로 고래고기를 팔았을 때는 지역 국회위원까지 줄을 서서 사갈 정도로 매일매일 사람들로 넘쳐났고 화기애애했지만 지금은 고기가 귀해진 것은 둘째 치고 가게세 등의 손익 때문에 고기값이 2~3배로 뛰어 서민들은 선뜻 찾기 어려워졌죠."

그는 수협을 통해 합법적으로 장사를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모든 고래고기를 혐오식품으로 비판하는데 대해서도 아쉬워했다. 고래를 테마로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는 일본과 뉴질랜드 처럼은 아니더라도 고래고기에 대한 연구와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했다.

박 씨 가족은 60년 동안 수육과 육회 요리를 고집해 왔다. 수육은 수협을 통해 구입한 순수 밍크고래의 우네(목살과 뱃살)와 바가지(몸통살) 그리고 오베기(꼬리지느러미)를 소금이나 멸치젓국에 찍어 먹는 단백한 상차림이다. 육회는 잡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순수 밍크고래의 붉은 살코기로 50년 비법이 담겨있는 소스를 사용해 만들고 있다.

고래고기는 예로부터 불포화지방산(오메가3)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고단백질 식품으로 암과 성인병 예방, 저혈압 치료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육식성(해양생태계 상위개체)인 돌고래의 경우 수은중독 등의 위험성이 제기되며 현재까지도 식용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박 씨는 고래고기 장사가 생계형에서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고래고기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엄두도 못 냈던 서민들에게 허기를 달래고 시름을 덜어주던 특별한 애환이 담긴 음식"이라며 "백발이 성성한 단골손님이 찾아와 어머니와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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