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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금융관행⑦] 통장하나 만들려면 은행들 "감 내놔라 배 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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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금융관행⑦] 통장하나 만들려면 은행들 "감 내놔라 배 내놔라"
  • 김국헌 기자 khk@csnews.co.kr
  • 승인 2018.07.23 07: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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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을 중심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정비와 감독강화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불만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윤추구를 우선시하는 금융사들의 조직문화와 경영철학에 변화가 없는 한, 규정의 사각지대에서 금융사들이 관행적으로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가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금융사들이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불합리한 금융관행을 시리즈로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사례1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김 모(여)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아이가 은행에서 입출금 통장을 만들려고 했지만 두번이나 거절당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은행 직원은 근로계약서를 가지고 오거나 공과금 자동이체 통장이어야 개설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김 씨의 아들은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김 씨가 보증을 설테니 만들어달라 했지만 이마저 거절당했다. 김 씨는 "사회 초년생은 통장을 만들 수 없는 것인가"라며 "아이 통장 만들러 갔다가 대포통장 만들려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고 주장했다.

#사례2 경기도 일산에 사는 박 모(여)씨는 은행에 통장을 개설하려고 갔다가 헛걸음을 한 채 돌아왔다. 이것저것 까다로운 증빙 서류를 요구하는 통에 결국 빈손으로 은행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증빙서류를 지참해 몇 차례나 은행을 오고가야 했던 김씨는 공과금 자동이체로 겨우 입출금통장을 만들 수 있었다.

#사례3 서울시 대조동에 사는 김 모(남)씨는 통장을 만들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 단순 입출금통장 개설이었지만 재직증명서나 급여명세서를 요구한데다 쉴새없이 통장개설 목적과 타 은행 계좌개설 여부까지 캐물었다. 그는 "질문을 얼마나 많이 하던지 식은땀이 나더라"라며 "통장개설을 하러간 건지 면접을 보러간 건지 모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개인이 통장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은 소비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민원 중 하나다. 통장을 개설할 때 은행 측에서 면접을 방불케하는 각종 질문공세를 퍼붓고 까다로운 서류를 요구한다.

지난 2015년부터 통장 만들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속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은행권의 불합리한 금융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은행은 통장개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캐묻고 목적이 있다면 그에 맞는 서류제출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모임회비 총무를 맡게 돼 공동으로 통장개설이 목적이라면 계약서, 회원명부, 회칙 등 입증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아르바이트 계좌는 고용주의 사업자 등록증, 근로계약서 급여명세표 등 고용확인 서류가 필요하고 사업자금 계좌는 사업거래 계약서 및 거래상대방의 사업자 등록증 등이 필요하다.

단순 입출금 통장 개설도 쉽지 않다. 공과금 자동이체 기록이나 급여명세서를 요구하는데 이를 제출해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있다. 직장이 있어 급여명세서를 제출할 수 있더라도 계속 거래를 해서 신용등급이 높아야 쉽게 통장개설이 가능한 형국이다.

문제는 소득이 없는 사회초년생, 주부, 노인 등은 통장개설이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사회초년생들의 경우 20살이 넘어가면 자신의 이름으로 한 통장을 갖고싶기 마련인데 취직을 해야 비교적 손쉬운 통장개설이 가능하다. 근로계약서를 제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청년 취업이 어려울 때 취업준비생들은 근로계약서가 없어 시중 은행으로부터 통장개설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직장이 없는 주부와 노인들도 통장만들기가 까다롭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통장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는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정부가 지난 2015년부터 개인이 통장을 개설할 때는 개인이 통장을 만들려면 은행에 재직 증명서나 근로 계약서 등 증빙 서류를 제출토록 하고 일정 기간 여러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법인 통장은 규제를 대폭 완화해 쉽게 개설할 수 있게 했으면서도 개인 통장 개설만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최근 들어 개인 대포 통장보다는 법인통장이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법인명의 통장은 개인 통장보다 거래 한도가 높고 더 쉽게 개설이 가능하기 때문에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이 선호하면서 법인통장의 발급 절차상 허점을 이용한 범죄가 늘고 있다.

이상금융거래탐지(FDS)의 구축이나 다른 제도가 미흡한 것을 소비자의 거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금융국장은 "개인 통장 개설을 어렵게 하면서 선의의 통장개설 조차 거부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문제"라며 "노약자, 주부, 사회초년생 등 상대적 금융약자들은 특히 통장 개설이 어려운데 이를 조금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개인 통장개설 절차를 풀어줄 생각도, 계획도 없는 상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2012년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 시행 전까지 통장 발급이 너무 쉽게 이뤄졌던 것이 사실"이라며 "통장은 공공재로써 자격심사를 거쳐 신중하게 발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훨씬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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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 2020-03-24 19:51:51
법인도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