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전 장관 측이 대학 여교수에게 횡령당했다는 176억원의 성격을 둘러싸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4일 박 전 장관 측과 경기도 분당경찰서에 따르면 박 전 장관은 자신과 친인척 등이 재단설립을 위해 준비중인 연구소의 운영자금 176억원을 수도권 소재 대학의 40대 무용과 여교수 A씨 등에게 횡령당했다며 A씨 등 관련자 6명을 경찰과 검찰에 고소했다.
원래 이 돈은 박 전 장관이 1987년 한국복지통일연구소를 설립한 뒤 자신과 가족, 친지, 친구 등이 재단설립 자금으로 갹출해 52개 계좌에 1∼5년짜리 금전신탁 상품 등의 형태로 넣어 놓았던 것이라는 게 박 전 장관 측 설명이다.
그 후 1998년 박 전 장관이 이사장으로 있던 '포럼21 한일미래구상'의 이사로 A교수가 등재되면서 A교수가 "은행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높은 이자를 받아주겠다"고 해 박 전 장관 측이 은행업무 일부를 A교수에게 맡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A교수에게 맡긴 돈이 적었지만 제법 이익을 불려오자 A교수가 관리하는 돈의 액수가 점차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박 전 장관 측이 A교수를 알게 되고 8년 가량 지나서이다.
박 전 장관 측이 2006년 7월 연구소를 재단법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은행에 가 보니 통장에 들어 있던 원금의 95% 가량이 없어졌더라는 것이다.
박 전 장관 측이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자 A교수는 그 해 30억원을 갚은 데 이어 지난해 초에도 일부 돈을 변제했지만 이후 돈을 갚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결국 지난해 7-12월 3차례에 걸쳐 박 전 장관과 그의 아내 등 8명이 A교수와 그 가족 등 6명을 고소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박 전 장관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K씨는 연합뉴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A교수가 은행 직원과 짜고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인출한 뒤 마치 원금에 이자가 붙은 것처럼 통장을 위.변조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A교수가 횡령한 돈이 박 전 장관 측의 비자금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에 대해 "비자금이면 수사기관에 고소해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겠냐"며 "통일복지분야의 재단법인을 만들기 위한 연구소기금용으로 가족과 지인 등이 십시일반 모아 만든 돈"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이 6공화국 당시 실세 정치인이었고 연구소 기금으로 보기에는 액수가 크다는 점에서 비자금 의혹이 완전히 씻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돈은 과거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3년)와 특가법상 뇌물혐의 공소시효(10년)를 모두 넘겨, 출처와 성격을 밝히기 위한 수사도 어려운 상황이다.
박 전 장관 측의 고소 사건을 수사중인 분당경찰서 관계자는 "15년이나 지나 당시 계좌를 추적하기 힘들다"면서 "고 고소 내용을 토대로 횡령 여부에 대해 수사할 뿐 돈의 성격을 밝히는 수사는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고소인 가운데 한 명인 A교수의 언니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고소사건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고, A 교수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난해 8∼12월 4개월간 휴직한 A교수는 올해 들어서도 이달부터 8월 하순까지 휴직서를 제출했으며, 다른 피고소인 2명과 함께 출국금지된 상태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