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청과 대법원에서 일하는 까다로운 인텔리들의 입맛을 손맛 하나로 사로잡은 곳이 있다. 17년동안 한결같이 ‘주꾸미’ 하나로 서초역 근처의 점심시간을 평정해버린 ‘청솔정’이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점심시간에는 ‘영감’ 소리 들으시는 지체 높으신 분들마저 서로 신발을 차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북적거린다.
이곳을 찾는 손님의 90% 이상은 ‘주꾸미 주물럭’을 주문한다. 그만큼 청솔정이 자랑하는 주력메뉴다.
음식을 시키면 상마다 올려져 있는 버너 위에 신선한 야채들과 함께 주꾸미가 벌건 양념에 버무려져 나오는데 보기에도 신선한 주꾸미와 풍성한 야채들은 익기 전부터 침을 꿀꺽 삼키게 한다.
주꾸미는 몸통에 8개의 팔이 달려 있는 것이 낙지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70cm 정도 되는 낙지에 비해 약 20cm 밖에 안되는 작은 몸집을 가졌다.
게다가 한 팔이 유난히 긴 낙지와 달리, 몸통의 두 배 정도 되는 8개의 팔은 모두 비슷한 길이를 가지고 있다.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은 회로 먹고, 보통은 고추장으로 양념하여 구워 먹거나 볶음, 전골, 주물럭으로 조리해 먹는다.
주꾸미가 익기 시작하면 하나의 냄비를 두고 동료나 애인, 가족을 가리지 않고 모두 경쟁자가 되기 시작하는데, 주꾸미의 탱탱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질감이 이빨 사이로 생생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푸짐하게 들어간 야채는 숨이 죽으면서 양념이 착 배어 있는데 주꾸미의 감칠맛을 한결 더해주기에 이리저리 젓가락질이 바빠진다.
라면사리를 넣어 먹으면 더욱 금상첨화. 한번 익혀 나오는 라면사리를 국물이 살짝 쫄았을 때 넣으면, 꼬들꼬들한 면발이 맛있는 양념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몇 젓가락이면 끝나기 때문에 다시 “여기 사리 하나 추가요!”를 외치게 된다.
주꾸미 주물럭에는 생각보다 국물이 많이 들어간다. 전골과 볶음의 중간 수준인데 소주 안주로도 그만이다.
얼핏 보기에는 새빨간 국물이 고추기름을 넣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지만 막상 먹어보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매운 맛이 입맛을 끌어 당긴다. 얼큰하면서도 화하게 퍼지는 맛은 소주 생각을 절로 나게 한다.
국물에 볶아 먹는 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코스다. 김가루에 참기름을 뿌려 볶아 먹는 밥은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문득 이곳 양념의 비결이 궁금해져 물어보니, 푸짐한 인상의 주인 아주머니는 “뭐 별거 없어, 그냥 맛있게 하면 되는거여, 요즘 사람들은 웰빙, 웰빙 하잖아. 주꾸미 신선하지, 자극도 없고 매콤하니까 우리집 음식을 좋아하나봐.”라며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로 구수하게 받아친다.
한 곳에서 17년 동안 주꾸미로 승부한 청솔정은 취재요청도 수차례 받아왔다. 왜 방송에 나가지 않았냐는 말에 주인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친다. “아유, 방송은 뭔 방송이여, 내 얼굴 나오는 거 아니여, 잘되면 그냥 잘되는 거지.’라며 “그래도 잡지는 얼굴이 안 나오니 좋지.”라며 웃는다. /김미선 기자 lifems@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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