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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장편소설>이 미친 넘의 사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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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장편소설>이 미친 넘의 사랑…(2)
  • 홍순도 csnews@csnews.co.kr
  • 승인 2007.01.16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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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기자님, 사람을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는 이렇게 귀찮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잠이나 주무시지 않고서!"

    여자는 이번에는 할 수 없다는 듯 투정 섞인 목소리를 토해내면서 황 기자를 마주 보고 일어나 앉았다. 목소리에서 황 기자를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가 풍기고 있었다. 태도나 말이 대범하기 이를데 없었다.

    황 기자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짐작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상반신에는 아무 것도 걸쳐져 있지 않았다.

    우유 빛 같은 하얀 피부와 윤곽 뚜렷한 앞가슴이 순간적으로 그의 눈을 아득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여성의 가슴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아, 조물주는 정말 위대해! 그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경탄을 기어코 터뜨리고야 말았다.

    얼마 후 그는 짧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눈을 감았다. 이불에 가려진 그녀의 몸 아래 은밀한 부분까지 훔쳐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여자의 대담한 성격으로 미뤄볼때 그녀의 몸 아래 은밀한 부분은 틀림 없이 벗겨져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부탁이니 어서 옷이나 좀 걸쳐요. 나는 성인군자가 절대 아닙니다. 농담처럼 들리는지는 몰라도 날아드는 주먹과 홀딱 벗고 달려드는 여자, 싸들고 오는 돈은 도저히 피하기 어렵다는 한국 사회의 걸쭉한 농담이 있어요. 제발 나를 도와주는 셈치고 옷을 걸쳐주시오"

    황 기자가 여전히 눈을 감은채 당부했다. 목소리에서 몹시 당혹스러워한다는 기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 기가 막혀서 원. 아니 누가 홀딱 벗고 달려들었다고 그래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여자가 지지 않고 맞받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러나 그에 대한 반감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된 거요?"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이예요? 집으로 가겠다는 나를 굳이 자고 가라고 끌고온 게 황 기자님인데 기억이 안 나세요. 천천히 잘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서둘러 옷을 걸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대답이 들려왔다. 황 기자가 정신을 쏟고 들어보니 그녀의 음성은 어딘가 귀에 익었다. 그는 눈을 살며시 뜨고 미모의 여자를 자세히 뜯어봤다. 아! 그는 그제서야 어젯밤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해날 수 있었다.

    술에 취해 거칠게 그녀의 옷을 벗긴 다음 전인미답(前人未踏)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가슴을 거세게 애무하던 기억이 우선 나고 있었다.

    그 다음은…아, 그는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녀의 허리 아래의 거웃에까지 손길이 잠깐동안이나마 머물렀던 기억 역시 슬그머니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끝까지 가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이 확실히 든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행중 다행은 그런 때에 쓰라고 있는 말이 분명했다.

    그랬다. 그녀는 조수연 여사가 경영하는 타이베이 최대 번화가인 시먼딩의 나이트 클럽 메이화(梅花)에서 그와 함께 밤늦도록 술을 마신 노미연(盧美蓮)이었다. 그에게 지우지 못할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바로 그 조 여사의 소개로 양밍산에서 얼떨결에 인사를 나눈 그녀의 수양 딸이었다

    황병덕 기자. 그는 서울의 M신문 국제부에서 월급이나 축내는 생활에 만족하던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기자였다.

    그런 그가 예류를 찾은 것은 우연히 타이완 연수 기회를 잡아 타이베이에 도착한지 일주일이 지난 1989년 7월 2일 일요일이었다.

    숙소 사무실 직원의 권유가 직접적이기는 했지만 그가 무려 8년간이나 타이완 대학에서 중국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 4년 선배 현문호(玄文豪)를 문득 생각해내고 전화를 건 것도 직접적인 계기라면 계기였다.

    "문호형, 병덕입니다. 지금 타이완 대학 근처 신하이루에 있는 국제청년활동센터에 머물고 있어요. 만날 수 있겠지요?"

    "아니 병덕이 자네가 웬일인가? 일년 만이니 꽤 오랜만이군. 지금 당장 내가 그리 갈테니 꼼짝 말고 있으라고. 내가 있는 곳이 그 근처의 대학 기숙사니까 빠르면 삼십분 이내로 갈 수 있을 거야"

    황 기자는 전화 저 건녀편의 문호가 여전히 엉뚱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돈키호테적인 옛날 기질을 잃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 결혼도 하지 않은채 박사 과정에 8년씩이나 매달렸으면 지칠 만도 한데 문호는 전혀 그렇지를 않았다. 아무튼 배짱 하나는 대단한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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