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배우 남경읍은 인생의 3분의 2를 뮤지컬을 위해 살았다. 뮤지컬 1세대라 불리는 그는 1978년 뮤지컬 ‘위대한 전진’으로 데뷔한 이래 30여 년 동안 한우물만 팠다. 그는 한국 뮤지컬이 처음 이 땅을 딛고,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다. 오랜 시간 그 길 위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인 조승우, 조정은, 박건형 등은 이제 ‘뮤지컬 스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배우 남경읍이 오는 8월 28일 ‘두 번째 태양’으로 관객과 만난다. “이 공연은 독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절대적인 선과 악이 싸우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그는 뮤지컬 ‘두 번째 태양’에서 일본을 의미하는 침략국 ‘부루국’의 우두머리 ‘이든’역을 맡았다. “‘이든’은 악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극중 한국인 ‘가우국’을 침략하는데 집착이 매우 강하다. 정신적 질환으로 비칠 정도로 침략에 대한 절대적 목표를 갖고 있다. 상당히 강한 배역이다. 강인하면서도 정신착란적인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뮤지컬 ‘두 번째 태양’은 ‘나’의 울타리를 넘어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세상을 밝히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됐다. 이 작품은 욕망에 지배당하는 자, 선을 위해 희생하는 자를 비롯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제시한다. “이 공연은 권선징악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귀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자는 말을 하고 있다.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 외에 음악과 무대, 무술신 등의 볼거리도 많다. 개인적으로 이 공연의 음악을 상당히 좋아한다. 관객들이 우리가 전하려는 주제 외에 다양한 것들을 즐기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배우 남경읍 정도의 경험과 존경을 받는 위치라면 무대 뒤에서 뒷짐 지는 여유를 부릴법도 하다. 그러나 배우 남경읍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50년 넘게 연기를 하신 선생님이 계신다. 지방공연중인 어느 날 분장실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텔레비전과 영화는 즐기면서 편하게 하는데 왜 무대에서는 아직도 가슴이 이리 뛸까.’ 이것은 배우들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 뻔뻔스럽고 강심장을 가진 배우라도 무대에 선다는 건 상당히 어렵다. 연습할 때는 잘 표현되는 것들도 실상 무대에서는 표현이 잘 안될 때가 많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나면 내가 배우의 자질이 없는가에 대한 의심도 하게 된다. 계속되는 순환이다. 무엇보다 그게 어려운 것이다.”
언제나 설레고 두려운 뮤지컬 배우로서의 인생. 남경읍에게 뮤지컬 배우로 산다는건 어떤 의미일까. “요즘 세상이 많이 각박하고 어렵다. 이 어려운 세상에서 내가 관객들에게, 혹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그것을 뮤지컬이란 그릇에 담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희망의 메시지를 조금이라도 전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우로 사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납경읍은 뮤지컬계의 기둥이자 많은 후배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 자리에서 든든하게 버텨주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촬영 중인 영화 ‘용서는 없다’가 12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당장의 영화와 공연 외에도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껏 약 50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 30년 동안 배우로서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 약 25년 정도 학생을 가르치며 느꼈던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피아노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피아노도 열심히 연습중이다.” 왜 하필 피아노일까.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피아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피아노 건반을 내려다보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낯설지만도 않다.
뮤지컬을 사랑한다고 조금의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배우 남경읍이 관객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공연예술을 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하면서도 느꼈다. 돈하고 상관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일을 한다. 최선을 다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약속을 드리겠다. 그러니 우리의 창작공연을 많이 찾아주셨으면 한다. 창작뮤지컬의 환경은 열악하다. 기본적 여건이 좋지 않고 관객들도 외면할 때가 많다. 허나 우리나라 뮤지컬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상업적인 외국 뮤지컬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의 공연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뉴스테이지=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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