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만드는신문=유성용 기자] 무료통화권 제공을 빌미로 고가의 내비게이션을 방문판매해 오던 업체들의 사기 행각이 나날이 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내비게이션 설치비용을 상품권으로 환급해 준다며 가입을 유도한 뒤 잠적해버리거나, 소비자 휴대폰으로 몰래 카드 대출을 받아 내비게이션 대금을 납부하는 피해가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 잇따라 제보되고 있다.
무료통화권으로 고가 내비게이션의 가격을 상쇄시켜 주겠다는 방식의 방문판매 사기 수법은 이미 구닥다리가 된지 오래다. 새로운 수법의 사기 유형을 소개한다.
◆사례1= 고가 내비게이션 설치비용 상품권으로 12회 환급 안내 후 잠적
안성시 공도읍의 곽 모(남.37세)씨는 지난해 12월 A 사로부터 내비게이션 설치 권유를 받았다. 당시 직원은 "360만원 상당의 주유 관련 상품권을 36개월 동안 분기마다 총 12회 분할 지급하니 무료나 다름없다"라며 가입을 유도했다.
미심쩍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곽 씨는 '공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360만원을 현금 지급하며 계약했다. 이후 올해 9월까지 3차례에 걸쳐 환급 약속이 잘 지켜지는 듯 했다.
9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곽 씨는 마음을 놓았으나, 최근 업체는 전화번호를 결번 시킨 뒤 잠적했다. 담당직원의 휴대폰에서도 더 이상 통화음을 들을 수 없었다.
◆사례2= 소비자 휴대폰으로 몰래 카드 결제
남원시 도통동의 배 모(남.45세)씨는 지난 9월 29일 B 사로부터 내비게이션을 무료 교환해주고 휴대폰 무료통화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솔깃한 마음에 신원정보를 알려주자 직원은 배 씨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내비게이션 외에 후방카메라와 샤크안테나 등 추가 장비를 포함해 총 480만원 상당의 기기를 설치해 버렸다.
작업을 끝낸 직원은 무료통화권 지급을 위해 무료통화권을 등록해야 하니 배 씨에게 휴대폰과 카드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잠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직원은 배 씨에게 "통장에 600만원이 입금됐으니 우리 쪽으로 이체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인근 ATM기기에서 확인해보니 거짓말같이 600만원이 입금돼 있었다.
문제는 돈의 출처였다. 600만원은 직원이 배 씨 몰래 현금대출서비스를 받았던 것. 사기라는 생각에 거세게 항의해 봤지만 직원은 계약서를 운운하며 "해지하고 싶으면 27%의 위약금을 지불하라"고 배짱을 부렸다.
◆사례3= 150만원 내비게이션 3배 뻥튀기 480만원 결제 후 함흥차사
소비자 김 모(남)씨는 지난 7월 C 사로부터 핸드폰 요금을 카드로 납부하면 150만원 상당의 최신 내비게이션을 무상 교환해 준다는 안내에 귀가 솔깃해 계약했다.
김 씨는 신용확인을 위해 신용카드를 달라는 직원의 말해 별다른 의심 없이 카드를 건넸고 문제가 발생했다. 카드 통지서를 받고 보니 480만원이 인출됐던 것.
그제야 계약서를 꼼꼼히 살핀 김 씨는 경악했다. 부품값은 150만원이며 480만원을 인출해가는 조건으로 차액의 이자부분은 판매회사에서 전액 부담하겠다는 조건이 있었던 것. 하지만 계약 후 지금까지 8월 9월분 이자 18만원 상당이 입금되지 않았고, 업체는 연락두절 됐다.
방문판매 관련 법률에 따르면 계약일 혹은 재화 등을 인도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청약철회가 가능하다.
하지만 청약철회는 쉽지 않다. 청약철회 기간 중엔 업체가 연락두절 되기 일쑤다. 기간이 지나면 계약금의 30%에 달하는 위약금 폭탄을 앞세워 배짱을 부린다. 심지어 이들은 피해 소비자가 직접 찾아오는 불편을 미연에 방지코자 지방에 사는 고객들을 주 타깃으로 설정하는 치밀함 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 6월경 무료통화권과 관련한 내비게이션 사기를 경험한 전라북도 고창의 노 모(남.41세)씨는 "서울에서 왔다"라며 "내비게이션 무료교환 혹은 설치를 권하는 업체 직원은 조심하고 볼 필요가 있다"라고 당부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사실상 공짜 내비게이션은 없다. 만약 계약을 하고자 한다면 신뢰할만한 업체인지 수소문을 통해 확인해 봐야한다"면서 "부실한 업체와 이미 계약을 맺었다면 재빨리 내용증명을 띄워 계약해지를 요청한 뒤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물품대금 결제 시 신용카드 할부 결제를 이용하면 차후 문제 발생했을 시 항변권을 통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라며 "현금 결제를 유도하거나 신용카드 결제가 아닌 현금대출, 카드론 등의 결제를 유도한다면 사기를 의심해 봐야 한다"라고 전했다.
항변권이란 할부거래법에 의해 20만원 이상의 결제 대금을 3개월 이상 할부 결제했을 시 업체로부터 취소전표를 발급받지 않아도 카드사 측에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