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초반 프로복싱 세계복싱협회(WBA) 플라이급 챔피언을 지낸 김태식 관장은 3일 기자와 만나 "이 달중 경기도 부천에 `김태식 복싱짐(Gym)'을 개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원종 네거리 4층 빌딩 꼭대기 65평 공간을 빌려놓고 이달말 체육관 문을 열 준비에 한창이다. 선수들은 11일부터 받되 따로 사범을 두지 않고 직접 복싱을 가르칠 생각이다.
1982년 '4각의 링'에서 내려왔으니 25년 만에 복귀하는 셈이다.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난 김태식은 1977년 데뷔 후 만 3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80년 2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WBA 플라이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 루이스 이바라(파나마)를 2회 1분11초에 KO로 눕히고 챔피언벨트를 빼앗아 파란을 일으켰다. 160cm에 불과한 작은 키에서 속사포처럼 뿜어내는 양 훅이 살인적이었던 그는 당시 `작은 거인'으로 불렸다.
그러나 최고의 순간은 길지 않았다. 같은해 12월 2차 방어전에서 타이틀을 내 준 뒤 17승(13KO)3패의 전적을 남기고 1982년 결국 초라하게 링에서 내려왔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은 건 링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당시 복싱계에 비리가 많았습니다. 복싱쪽으로는 발길도 돌리지않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노력을 했죠"
그 후 농수산물을 수입하던 무역회사와 갈빗집, 술집을 운영하는 등 사업가의 길을 갔지만 숱한 사기극에 휘말리는 등 실패와 방황을 거듭했다. 2000년 중랑구 면목2동 동부시장 한편에 '불타는 돼지껍데기'라는 음식점을 열면서 겨우 안정을 찾았다.
부인 양미선(36)씨와 함께 여든 살 노모를 모시고 중학생 아들 건희(15) 딸 가희(13)을 키우는 평범한 가장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눈길도 주지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던 복싱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다. 수년 전 `김태식 복싱클럽'을 운영하겠다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긴 했지만 당시에는 체육관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배운 게 복싱 뿐인데 다른 일을 하려니까 잘 안 되는 게 당연하죠. 나이 쉰이 돼서야 '나한테는 역시 복싱 밖에 없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한국권투위원회(KBC)에도 발길을 끊었었지만 2일 임시총회에 참석해 최근 심각한 내분에 휩싸인 프로복싱계의 단합을 호소했다.
"복싱계도 바뀔 때가 됐습니다. 후배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복싱에 전념하도록 선배들이 단합해야 합니다"
하루 14시간 목살, 항정살이며 돼지껍데기를 굽느라 연탄가스를 맡으며 일해 모은 돈으로 복싱체육관을 운영해보겠다고 나선 만큼 잘해보고 싶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복싱은 좀 압니다. 생활체육부터 시작해서 1980년대의 저처럼 `헝그리정신'이 있는 선수를 발견하게 되면 한번 제대로 키워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