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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리뷰] 연극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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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리뷰] 연극 ‘고래’
멍텅구리 잠수정 속 박제된 죽음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01.12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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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침잠해버릴 것만 같은 깊은 어둠. 묵직한 어둠의 밀도로 둘러싸인 잠수정에는 손바닥만한 햇빛 한 줄기조차 스며들지 않는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이상적 신념 속에서 더욱 굶주려가는 이들과 자신의 뱃속을 채우기 위한 잇속으로 불물 가리지 않고 돈만을 좇는 이들의 대조적 양상은 각각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무장간첩의 신분으로 남한에 잠입해 필요한 물품을 교환해가는 이들은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해낸다. 관절염을 위한 파스에서부터 마트에서 훔쳐온 콘돔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물품들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천진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어선의 그물이 잠수정의 추진날개에 휘말리면서부터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념의 가르침대로 철저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에게서는 비장함을 넘어선 섬뜩함이 그대로 노출된다. 동료 대원을 사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두 대원은 생사를 넘나들며 실존에의 공포에 무력하게 무너져 내린다.

공연 내내 울려 퍼지는 고래의 울음소리와 꽉 막힌 잠수정은 심해 저 아래에 자리해있는 고래의 뱃속을 연상케 함과 동시에 태초의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어머니의 자궁을 떠올리게 한다. 생(生)의 시작과 사(死)의 끝이 공존하는 잠수정의 공간은 절대 고독의 공간임과 동시에 무한 공포의 공간이다. “내래 무서워 죽갔어…”라며 무전장에게 자신을 쏘아줄 것을 부탁하는 부기관장의 모습은 죽음 앞에 발가벗겨진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풍전등화와 같은 현실에서도 희망을 놓을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자멸로 운명을 달리한다. 하나의 일화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버린 1998년 속초 북한 잠수정 사건. 이들의 죽음은 박제된 채로 보존돼 지금의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살아있다는 거, 고 자체가 욕망 아니네?”라고. 

[뉴스테이지=박소연 기자]
(뉴스검색제공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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