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하더라도 대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발이 되고, 음식이 되고, 물이 되고, 꿈이기도 했습니다.
저 하나만 있으면 주전부리에 허덕이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과자뿐입니까. 음료수, 떡볶이도 저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배를 채우고, 갈증을 해소하고도 거스름돈이 손에 쥐어졌습니다.
아이들만 저를 좋아했던 게 아닙니다. 어른들도 저 하나만 있으면 부유하지는 않아도 삶의 피로를 덜 수 있었습니다. 삶의 피곤함을 덜기 위해 피우던 담배도 저 하나면 족했습니다. 그네들은 저를 복권과 맞바꾸며 대박의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저와 삶의 희로애락을 나눴던 사람들은 이제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기껏 자일리톨껌 한 통을 사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저는 이제 마을버스(600원)도 탈 수 없습니다. 과자는커녕 음료수도 살 수 없습니다. 편의점에 진열된 과자 30개 중 6개만이 저를 주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일반 자판기에서는 음료수 15개 중 4개만이 저와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1999년만 해도 저 하나로 지하철 여행도 가능했지만, 이제는 저와 100원짜리 친구 4개를 내밀어야만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말의 희망은 있었습니다. 2500원짜리 담배를 사기 위해 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저는 “그래도 밥값은 하고 있잖아”라며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를 설파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그것마저도 귀찮다고 합니다. 아예 담배 두 갑을 한꺼번에 삽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제가 무겁고 거추장스럽기만 하다며 저금통이나 행운의 분수대에 저를 던집니다.
저는 지금껏 세 번의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남대문이 그려진 지폐에서 이순신이 새겨진 지폐로, 다시 비상의 날개를 편 학과 동고동락하는 동전으로…. 그때마다 사람들은 저에게 내일의 희망을 그렸습니다. 비상의 날개를 편 학처럼….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저에게서 내일의 희망을 거두려 합니다. 희망은커녕 현실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저를 보면 삶의 피곤함이 몰려온다고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물가의 어두운 그림자가 제 얼굴에 그려져 있다면서요. 저는 요즘 악몽에 밤잠마저 설칩니다. 인간세계에서 사실상 퇴출된 10원짜리 친구가 “너도 나한테로 와!”하고 소리치는 환영은 저에게 닥칠 앞날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저는 1982년생입니다. 아직은 팔팔한 25세에 불과합니다(헤럴드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