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만드는신문=차정원 기자]취업문은 좁아지고 생활고는 가중되면서 서민들 사이에 소자본 창업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철저한 사전조사 없이 발을 들여 놓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볼 수 있다.
최근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 제보된 소자본 창업 관련 피해는 대부분 생계유지가 어려운 서민들에게서 발생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창업을 준비하지만 대리점 계약이 중간에 파기돼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을 한꺼번에 날리는가 하면 중년 실직의 위기를 타개해 보려다 빚만 떠안고 넘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이에나'들이 벼랑 끝에 선 서민들의 통장에 남아 있는 마지막 소액의 돈을 뜽어 가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서민들이다 보니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신문이나 TV광고, 영업직원의 감언이설만 믿고 주먹구구식으로 뛰어 드는 것이 화근이다.
▶ 대리점 내려다 망연자실.. “우리아이 어떻게 키우나”
남양주시 오남6리의 김 모(여.46세)씨는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작년까지 피부샵을 운영해 생계를 유지했지만 올해 불황을 맞아 폐업했다.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가는 가계의 압박에다 1월 중순 종양까지 생기는 불상사가 생겼다.
지난 1월 김 씨는 마침 먹고 있던 건강 보조식품이 눈에 띄어 A사에 연락해 대리점을 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직원의 안내에 건강식품판매 수료증을 받기 위해 3만원을 내고 5시간 교육을 받았고 시청에서 사업 허가증도 발급 받았다.
2월 9일 김 씨는 대리점을 개업하기 위해 전에 폐업한 피부샵 가게를 재계약하고 각종 사무기기를 들여 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러나 간판, 명함, 팜플렛 등 세부 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전화했지만 신호가 가지 않았다.
이 후 몇 일간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김 씨는 설 연휴 때문이라 생각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연휴가 끝나도 감감무소식이어서 김 씨는 초조해졌다. 하루빨리 영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당장 생활비 조달이 여의치 않았던 것.
수없는 연락 끝에 지난 2월 20일 마침내 직원과 연결됐지만 내부 사정이라며 무작정 기다려 줄 것만을 요구받았다.
대리점 개업에 가족의 생계가 달린 김 씨에게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음날 김 씨는 업체에 내용증명을 보내 그동안 대리점을 열기 위해 들였던 비용과 수고를 보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업체 관계자는 “잘못한 것 없으니 증명이건 뭐건 할 테면 하라”고 큰 소리를 쳤다.
말문이 막힌 김 씨는 2지난달 26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출했지만 "당장 살아갈 길이 막막한 상태"라고 발을 굴렀다.
▶ 1천5백만원에 경품 게임기 창업, "자릿세도 안나와"
인천시 산곡2동의 손 모(남.47세)씨는 지난 1월말 일자리를 구하던 중 소자본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경품 게임기 광고를 접하게 됐다.
손 씨는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으로 통화를 해 본 후, 다음날 업체를 찾아갔다. 직원은 “한 달 평균 350만~400만원의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좋은 자리에 책임지고 설치 해드리니 수금만 하면 된다”고 설득했고 손 씨는 2월 1일 1천475만원에 5대를 계약했다.
하지만 5대의 기계로 손 씨가 한 달 동안 벌어들인 수입은 고작 60만원. 한 달간 자릿세 명목으로 지불한 돈 75만원과 경품 구입비 34만원을 제하면 50만원의 적자가 났다.
뿐만 아니라 한 달간 운영하면서 세 번이나 고장이 났고 AS기사는 최소 3일이 지나서야 늦장 방문했다.
손 씨는 “얘기한 것과 너무 다르지 않느냐”고 항의했지만 직원은 “그럴 리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부아가 치민 손 씨가 “남의 생계를 이렇게 망칠 수있냐”며 언성을 높이자 직원도 “어디서 큰소리냐”며 되레 역정을 냈다.
손 씨는 거액을 들여 마련한 기계로 매달 적자를 보고 있지만 계약상 적자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어 피해보상도 받지 못하는 딱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 노년에 빠진 달콤한 창업의 ‘늪’
고령에다 취업난으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경기도 이천 사음동의 조 모(여.65세) 씨는 지난해 중순 한 케이블채널에서 쥬얼리 회사인 C사의 창업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
업체 관계자는 “회사에서 점포의 섭외 및 설치를 무상으로 지원해 창업을 도와주고 장소 이전 시 재섭외 및 재설치 등 모든 것을 책임진다.주인이 관리만 잘하면 한 곳에서 150만~300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호언했다.
조 씨는 서울지역에 위탁점 2곳을 내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700만원을 지불했다. 또한 이후 1곳을 더 추가해 창업자금으로 총 1천50만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6월 경 점포를 오픈, 5개월간 운영했으나 업체 측의 말과 달리 3개 점포에서 200만원도 벌지 못했다.
조 씨는 계약을 해지하고 폐업하기 위해 업체 측에 계약해지 의사를 밝히고 타인에게 점포를 양도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두 달여가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이었다.
조 씨는 "적은 돈으로 창업할 수 있다고 유혹하고는 계약금을 받자 돌변했다. 창업으로 오히려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러나 C사 관계자는 "계약 당시 예상수익이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고 회사는 물품공급에 대한 계약만 맺었을 뿐 판매에 대한 책임은 모두 창업자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점포 인수자가 없어 이를 조 씨에게 설명했으나 소송을 걸겠다고 위협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조 씨는 5개월이 지난 올해 3월까지 점포를 양도하지 못하고 매달 엄청난 적자를 스스로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 씨는 “5개월 동안 단 한명의 인수자도 못 찾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아예 (인수자를)찾으려는 의지가 없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남은 대출금으로 연명하고 있다”며 “더 이상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호소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