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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살 대한민국 노인의 '5천km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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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살 대한민국 노인의 '5천km 마라톤'
  • 김영인 주필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06.29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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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김영인 주필] 1928년 미국에서 대륙 횡단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서부의 로스앤젤레스에서 동부의 뉴욕까지 무려 5470km를 달리는 대회였다. 이 대회에는 '버니언 더비(Bunion Derby)'라는 이름이 붙었다. '버니언'은 엄지발가락 안쪽이 붓는 증세다. 그러니까, '엄지발가락에 염증을 일으키는 대회'라는 그럴 듯한 이름이었다. 


대회를 기획한 사람은 파일이라는 이벤트업자였다.  파일은 돈 벌 궁리부터 했다. 여러 가지 부대행사를 추진했다. 마라톤 코스를 미국 전역의 마을을 골고루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후원금을 받았다. '66번 고속도로협회'는 6만 달러의 기부금을 냈다.  구두제조업자, 신발패드업자, 선탠오일업자 등도 접촉했다. 


대회에는 모두 421명의 선수가 참가하기로 했다. 이들에게는 '미국 소년의 새 영웅'이라는 멋진 칭호가 붙었다. 그래도 그 영웅들은 참가비 100달러씩을 내야 했다. 


'스포츠 역사상 최대 사건'이라며 떠들썩한 가운데 대회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하지만 대회 첫날부터 222명의 선수가 탈진해서 나가떨어졌다. 어떤 선수는 뺑소니차에 희생되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대주기로 했던 사람들은 뜨거운 모하비 사막에서 견디지 못하고 슬그머니 줄행랑을 쳤다. 선수들의 숫자도 점점 줄었다. 오하이오주에 이르러서는 55명만 남았다.   


숫자가 줄어드는 바람에 연도의 마을도 김이 빠졌다. 구경꾼도 외면했다. 대회를 겨냥했던 순회극단도 관객이 적어서 시들해졌다. 


종착지인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이르는 10번가에도 구경꾼이 '별로'였다. 종착점에 1만8천 개나 되는 '유료좌석'을 만들어놓았지만 채운 사람은 4000명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이 대회에서 영예의 1등은 앤디 패인이라는 19살 소년이 차지했다. 기록은 573시간 4분 34초였다. 시속 9.5km 정도의 속도로 장장 5470km를 달렸던 것이다. 2등을 한 35살의 존 살로라는 사나이보다 17시간 28분이나 빨랐다. 


패인의 상금은 2만5천달러였다. 그렇지만 패인은 그 상금을 움켜쥐고 혼수상태에 빠져야 했다. 2등에게는 1만달러가 지급되었다. 그리고 이벤트업자 파일은 쫄딱 망해야 했다. '흥행 참패'였다. 


이 거창한 대륙 횡단 마라톤에 대한민국의 65살 노인이 도전,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뉴욕 한인마라톤클럽의 권이주 회장이다. 아시아 사람으로는 처음이라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권씨는 지난 3월 23일부터 6월 25일까지 하루 8시간씩, 평균 52km를 꼬박 95일 동안 달렸다. 코스도 만만치 않았다.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을 때는 오르막길만 16㎞가 이어지기도 했고, 애리조나 사막에서는 모래바람이 불어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고 했다. 권씨의 키는 162cm에 불과했다. 


더구나, 과거에 열렸던 대회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단독 도전'이었다. 혼자서 서부의 로스앤젤레스를 출발, 동부의 뉴욕 유엔본부 앞까지 고독과 싸우는 외로운 질주였다.   


'선수'가 한 명뿐이니 흥행효과도 없었다. 구경꾼 역시 없었다. 월드컵 축구대회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이 달릴 때는 전 국민이 응원했지만, 권씨에게는 그 응원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달린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세계 평화와 남북 통일을 기원하며 동해와 독도에 대한 우리나라의 영유권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당초에는 7월 9일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6·25전쟁 60주년'인 6월 25일로 앞당겼다고 했다.


권씨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당뇨병 때문이었다. 1996년 달리기를 시작, 2000년 마라톤 첫 출전 이후 100차례나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노익장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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