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아이폰 돌풍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하던 KT 이석채 회장이 아이폰 때문에 '사면초가'의 신세에 처했다.
지난해 말 KT의 아이폰 독점출시 후 이후 한 때 스마트폰 시장을 선점하나 싶었지만, 전자업계와 통신업계의 거인인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의 역공을 받아 되레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여기에 최근 사명을 바꾸며 공격 경영을 펼치고 있는 LG U+와의 관계도 삐걱대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협력관계였던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과 정보통신부 출신의 동지인 이상철 LG U+ 부회장을 적으로 돌린데다, 이동통신업계의 최강자인 정만원 SK텔레콤 사장과는 물러설 수 없는 승부에 내몰리게 돼 이 회장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더욱이 KT가 목을 매고 있는 아이폰4의 한국 출시 일정이 석연찮은 이유로 무기한 연기돼 이 회장을 궁지로 몰고 있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아이폰'에 두번 당하지 않는다
이 회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가 KT에 출시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 4월 '쇼 옴니아'는 서자 신세'라는 발언을 내놓은 데 이어 또 다시 삼성전자의 홀대에 아쉬움을 하소연한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갤럭시S를 KT에 공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체 개발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스마트폰 '바다폰'은 SK텔레콤과 LG U+에 우선 공급할 것으로 알려져 KT가 삼성전자로부터 철저히 소외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 회장이 아이폰을 독점 출시한 이후 멀어진 양사의 관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 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최지성 사장에게 대놓고 따질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는 점이다. 당시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최 사장의 부탁을 먼저 무시하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잠식해온 것은 이 회장이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한 동안 궁지에 몰렸던 최 사장은 이 회장에게 감정의 골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삼성전자가 KT의 최대 경쟁사인 SK텔레콤과 손을 맞잡고 '아이폰 잡기'에 나서는 것을 이 회장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 할 국내 협력기반 없다보니 KT의 외국산 휴대폰 비중이 날로 늘어나는 현실이 이 회장에게는 큰 짐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사업상의 문제지 특정 사업자를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KT에 앙갚음을 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신업계에서는 바다폰의 국내시장 홍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삼성이 KT를 배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와 KT의 관계에 난기류가 형성된 게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정만원 SKT 사장, '데이터 요금제'로 무한공세
정만원 SK텔레콤 사장 또한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역전을 노리며 이 회장을 단단히 벼르고 있는 형국이다.
정 사장은 지난 14일 스마트폰 5만5천 원 이상 요금제 사용자에게 데이터 무제한 사용을 허용한다는 초강수를 뒀다.KT가 쓰다 남은 무선 데이터 용량을 다음달로 이월해 쓰는 '무선 데이터 이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보다 훨씬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마트폰 사용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에서 공급받는 갤럭시S로 제품 경쟁력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판단에 따라, 가격 경쟁으로 아이폰의 기세를 완전히 눌러버리자는 속내가 읽힌다.
스마트폰 수요는 단말기 성능과 어플리케이션의 활용도는 물론, 이통사의 서비스에도 영향을 뱓는 만큼 SK텔레콤의 무선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 시행이 곧 출시될 아이폰4에 대한 수요를 어느 정도 억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정 사장의 이러한 전략이 발표되자 KT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경쟁력에 SKT의 막강한 마케핑 파워가 더해질 경우 KT가 국내시장에서 약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시장의 냉혹한 평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상철 LG U+ 부회장, 자존심을 걸었다
과거 이 회장과 정보통신부에서 한솥밥을 먹던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도 최근 통신비를 최대 5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온국민은 요(YO)' 요금제를 발표하면서 KT가 주도한 스마트폰 열풍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상철폰'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옵티머스Q'가 아이폰의 인기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자, 저렴한 요금과 서비스로 가입자 수를 늘려 보완하겠다는 의도다.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이석채 회장 사이에 팽팽한 '라이벌 의식'이 감지된다고 한다.
실제로 KT와 LG U+가 상대방 회사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 '물타기' 보도자료를 내놓을 정도다.
LG U+는 최근 KT 이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소기업 상생경영'을 발표한 당일에 중소기업 상생경영 전략을 강조한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앞서 KT는 지난달 LG U+ 이상철 부회장이 '온국민은 요' 계획을 발표한 날에 휴대폰에도 가구단위 사용개념을 도입한 '쇼 퉁' 상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상철 부회장과의 관계마저 악화되면서 통신업계에서 이석채 회장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업계의 반응도 싸늘해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KT가 올해 네트워크를 바꾸면서 에릭슨 등의 외산 장비를 쓰고 국산 사용장비를 외면하자 삼성전자 등 국내 IT업체에선 'KT는 외산 도입의 선봉장'이라는 비아냥이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헉! 아이폰4 너마저도...
이 같은 상황에서 이석채 회장을 더욱 궁지로 모는 일이 벌어졌다.
애플 '아이폰4'의 출시 일정이 한국에서만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KT는 도입 시기가 1~2개월 연기된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형식등록 준비 기간과 승인 등 절차를 감안하면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시기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애플 측은 한국정부 측에 공식적인 승인요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KT로서는 아이폰4의 출시 일정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말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LG U+의 융단폭격이 시작된 마당에 기존 모델인 '넥서스원'과 '아이폰3GS'만으로 맞서야 하니 이 회장으로서는 더욱 막막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