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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장편소설>이 미친 넘의 사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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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장편소설>이 미친 넘의 사랑…(3)
  • 홍순도 csnews@csnews.co.kr
  • 승인 2007.01.17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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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야, 그래 왔으면 득달같이 연락을 해야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겨우 나를 찾아. 섭섭하다 섭섭해"

전화를 내려놓은 지 채 30분도 안돼 문호는 정말 타이베이의 유스호스텔 격인 국제청년활동센터 5층에 있는 황 기자의 방에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아마 아래층의 사무실에서 그가 일 주일째 묵는 중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아, 형! 정말 너무 너무 죄송합니다. 하지만 도저히 시간을 낼 방법이 없더군요"
사실 황 기자는 지난 일주일동안을 진짜 정신 없이 보냈다. 날씨가 무더울뿐만 아니라 음식도 전혀 입에 맞지 않아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세계적 명성을 떨친 바 있는 그 유명한 타이베이 시내의 끈적끈적한 분위기의 이발청을 반드시 한번은 경험해보리라 하던 소박한 소망조차도 아직 실현시키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래, 도대체 무슨 일로 온 거야? 그거나 좀 알아야지 내가 도와주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설마 타이완의 성 풍속 산업같은 짜릿한 주제의 취재를 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문호가 황 기자가 앉아 있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다음 창서우(長壽)표 담배 한 개비를 피워물면서 걸쭉한 농담을 건넸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동안(童顔)인 그는 반소매 와이셔츠 차림의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타이완 대학생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차림이었다.

"그거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고 한 4개월 정도 시간만 보내면 되는 단기 연수 기회를 운좋게 하나 따냈지요. 회사에서 그리 대단한 능력을 인정받는 입장도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온 거예요. 진짜 별 일 아닙니다"

"그래? 그러면 시간은 많겠군. 그건 그렇고 그 동안 어디 괜찮은 핑크빛 러브 어페어라도 좀 엮어놨나? 하늘을 찌르는 힘을 가진 총각이라면 그런 맛이라도 있어야지. 비록 일 주일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짧은 시간은 아니지……"

"더워 죽겠는데 만나자마자 그게 무슨 소립니까? 식욕조차 없는 사람에게 그게 어디 될 법이나 한 얘깁니까? 아, 그리고 나야 형도 알다시피 여자 문제에는 쑥맥 아닙니까? 대학 다닐때 청량리나 미아리등에 출입해본 경험도 거의 없고. 서른 두 살이나 됐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건 잘 알잖아요"

황 기자는 농담 좋아하는 문호의 입을 빨리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그의 말을 잘랐다. 가만 놔뒀다가는 더욱 끈적끈적한 얘기들이 흘러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건 자네가 여기 사정을 잘 몰라서 그래. 이곳 생활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아마도 마음이 달라질 거야. 더군다나 여기 여자들은 더운 지방이라 그런지 상당히 개방적이야. 자네같이 체격 좋고 정의감 강한 시원시원한 매력적인 성격의 친구를 여기 여자들이 가만 놔둘 것 같아? 거기에다 인물도 좋겠다, 신문사 기자라는 만만치 않은 프리미엄까지 가지고 있으니 여기 여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헌팅감이라고, 자네는! 아마 자네같은 먹음직스런 먹이감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타이베이에 곧 돌면 자네 골치 좀 아플 거야"

문호는 정말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기야 문호의 눈에는 후배 황 기자의 허우대나 인물이 웬만한 영화배우 이상으로 비쳐지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형, 거 피곤하고 쓸데 없는 얘기는 그만 하고 우선 목이나 축이면서 회포나 풉시다"

술 좋아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황 기자는 지난 일 주일동안 술을 한잔도 마시지 못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는 침대에 놓아둔 작은 가방에서 타이완 특산물인 사오싱주(紹興酒) 한병을 꺼내 문호와 자신에게 한 잔씩 따랐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공부는 잘 되나요? 작년에 잠시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는 한 2년 정도면 끝날 거라고 했는데, 공부는 이제 마무리 단계겠군요, 그때 말대로라면 내년 쯤에는 학위를 받을 수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드디어 고등 룸펜 생활에서 벗어나 형이 그렇게 원했던 교수가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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