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윤주애 기자] 돌아가신 부친이 생전에 구입한 건강식품값을 내라며 독촉장이 날아들었다.
당사자가 고인이 됐기 때문에 실제로 해당 제품을 구입했는지 유족들은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유족들은 독촉장에 따라 돈을 지불해야 하는걸까?
정답은 '아니오'다.
사실 관계를 입증할 책임은 유족이 아니라, 제품을 판매한 업체에 있기 때문이다.
부산광역시 최 모(남.49세)씨는 올해 3월 15만원 상당의 건강식품 대금청구 독촉장을 받았다. 업체에 확인해보니 지난해 11월에 사망한 아버지가 생전에 구입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최 씨의 아버지가 2008년부터 마늘, 민들레 등으로 만든 환제품을 비롯해 몇 가지 제품을 여러번 구입했다고 밝혔다. 그 중 지난해 10월30일 마지막으로 구입한 건강식품 값 15만원 가량이 미납됐으니 이를 갚으라고 독촉했다.
최 씨는 어머니가 이런 제품을 싫어하니까 아버지가 몰래 숨기고 먹었는지 모르겠으나, 어머니가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르고 제품을 본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제품을 구입하고 바로 대금청구서가 온 것이 아니고, 사망한 지 한참 지나서 온 것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최 씨는 "너무 황당해 업체 측에 전화로 문의도 하고, 내용증명도 2번이나 보냈지만 부모가 빚을 남기면 자식이 갚는게 당연하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최 씨는 "아버지가 제품을 구입한 것이 사실인지 확인조차 안되는데도 업체의 대금청구서만 받고 돈을 모두 내야 하냐"고 고민을 털어놨다.
이런 경우 업체가 돈을 받으려면 최 씨의 아버지가 해당제품을 구입했다는 증거가 먼저 있어야 한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통신판매업자는 재화등의 구매에 관한 계약이 체결된 사실과 그 시기, 재화등의 공급사실 및 그 시기를 입증해야 한다.
최 씨 아버지의 경우 전화판매 또는 방문판매에 해당되므로 '방문판매법'에 따라 건강식품 등을 구매할 때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따라서 해당업체에 계약서가 있는지 여부, 계약서상에 고지해야 될 내용이 모두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사업자에게 계약서를 교부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며 "계약서의 교부 사실 및 그 시기, 물품의 인도 사실 및 그 시기에 관해 분쟁이 있는 경우에는 사업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사업자는 물품을 인도했다고 하지만 소비자는 인수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할 경우, 교부사실이나 인도사실을 사업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물품을 교부 또는 인도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사업자와 계약할 때 '신청서'라고 해서 작성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계약서'여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계약서에는 여러 가지 내용들이 빽빽이 적혀 있는데 통상 그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소비자의 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및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사업자에게 계약서 교부의무와 함께 그 입증책임도 부여됐다. 최근 만들어진 계약서에는 '본인은 계약서 사본 1부를 수령했음을 확인합니다'라는 문구까지 있고 그곳에 서명이나 날인을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