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 현대자동차의 전기자동차 사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가 '기술력은 충분하다'고 자신하면서도 정작 대량 생산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청와대에서 지난 9일 국산 1호 소형 고속전기차 '블루온(BlueOn)'을 공개했다.
블루온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된 양산형 전기차다. 작년 7월 출시된 최초의 양산 전기차인 일본 미쓰비시 아이미브에 비해 주행성능, 충전시간 등에 있어 성능이 앞선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현순 현대차 연구개발 부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현대차의 전기차 기술력은 글로벌 시장 어디서도 감탄할만한 기술력"이라고 자신감 표출했다.
블루온 공개에 맞춰 지식경제부는 2020년까지 고속전기차 10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야심찬 육성계획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2017년으로 예정했던 중형 전기차 양산시기를 2014년으로 3년 앞당기고, 배터리 교체형 전기차 개발도 내년 상반기까지 타당성을 검토한 뒤 2012년부터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2015년까지 국내 소형차 시장의 10%, 2020년까지는 국내 승용차 시장의 20%를 전기차로 교체할 방침이며, 2020년까지 100만대의 전기차와 220만대의 충전기를 보급한다는 구상이다.
<청와대에서 열린 공개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블루온을 시운전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전기차가 급하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팔을 걷어붙인 것과 달리 현대차는 순수 전기차 사업에 투자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 시장 전망에서 현대차와 정부 간에 시각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향후 10년 동안 전기차가 50만대 정도 보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정부 전망치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전기차보다 일본서 내수 1~2위를 할 정도로 검증을 마친 하이브리드카 투자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기차 프로젝트를 공동 수행하는 모 전장부품 회사 대표 또한 "현대차가 전기차 수요에 부정적 전망을 갖고 있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는 전기자동차의 보급 확대로 인해 자동차 산업의 헤게모니가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배터리 업체로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로 9일 블루온이 공개되자마자 증권가에서는 현대차 외에 다른 수혜주들이 높은 관심을 받았다.
블루온의 생산에는 현대차 외에도 다수의 상장사가 참여하고 있다. 만도와 효성, SK에너지, 한라공조 등 대형사를 비롯해 인지컨트롤스, 뉴인텍, 우리산업 등 중소형사가 부품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중 뉴인텍과 우리산업, 일부 배터리업체가 수혜주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위기다.
현대차는 블루온의 개발에 총 400여억 원을 투입했다. 인도·유럽에서 판매되는 현대차 경차 '아이텐(i10)'을 기반으로 지난 1년간 정부가 94억원, 현대차가 306억원의 비용을 부담했다.
내연기관을 이용하는 신차의 경우 개발비용이 2천~3천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개발 비용이 들어간 셈이다. 이를 두고 현대차가 정부 정책에 손뼉만 맞춰주는 소극적인 투자로 일관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어쨌거나 초기 개발투자가 작다는 것은 현대차가 무리해서 양산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미인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현대차는 당분간 최소한의 투자로 기술력을 축적하면서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한국 미국 일본에 중국까지 가세할 미래 전기자동차 전쟁에서 안일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급할 것 없다.. 따라가면 되니까'
현대차가 전기차 사업에 소극적인 것은 고유의 경영철학에 의한 냉철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수년 사이 미국 중국 유럽에 이어 대규모 생산 공장을 증설, 세계 5위권 업체로 올라섰다.
이는 단기간에 생산 시설을 수백만대로 늘리고 현지화에 나선 도요타 모델을 따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점만을 흡수해 120% 이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품질철학을 중시하는 정몽구 회장 특유의 공격경영까지 더해져 현대기아차는 양적 팽창에 질적 완성도까지 높아졌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해외 공장에서만 300만대 생산 규모를 갖췄으며 2013년에는 650만대 판매를 목표로 2~3년간 100만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더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당장 내연기관 자동차로 재미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불확실한 전기차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일 이유가 별로 없지 않느냐"며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섣불리 소비자와 동떨어진 전기차 양산에 뛰어들었다 손해를 입느니 시장이 형성되면 그때 뛰어들어도 늦지 않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블루온은 제작 원가만 6천만원 정도다. 국산 대형 고급세단보다도 비싸다. 정부가 2천만원을 지원해준다 하지만 가격저항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이미 현대차는 야심차게 내놓은 제네시스가 뛰어난 품질에도 불구하고 가격저항 때문에 판매 부진의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 전기차에서도 가격저항이 한동안 성장을 가로막으리라는 것이 현대차의 판단이다.
또 소형 모델을 선호하지 않는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 또한 전기차 사업의 걸림돌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 개선되지 않는 한 현대차의 전기자동차 사업은 '소걸음' 전략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