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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드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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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드림팀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09.1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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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선보인 뮤지컬 ‘피맛골 연가’에 대한 반응이 호평일색이다. 뒤늦게 칭찬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오랜만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잘 버무린 대형 창작 뮤지컬의 등장이 반가워 키보드를 두들겨본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성과 공들인 티가 역력한 이 작품에 쓴 소리보다는 격려의 말 한 자리 더 건네고 싶은 마음에서다.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이 손잡고 추진한 서울시 대표 뮤지컬의 첫 번째 작품인 ‘피맛골 연가’는 유희성 연출, 배삼식 작가, 이란영 안무가, 장소영 음악 감독, 서숙진 무대 디자이너, 한정임 의상 디자이너 등 등 손꼽히는 실력파 제작진의 의기투합으로 제작 발표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나’였다.

 

기존의 관제 뮤지컬이 주로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하여 스테레오 타입의 주인공과 정형화된 무대를 선보여 왔던 것에 비해 ‘피맛골 연가’는 양반들의 말을 피해 서민들이 오갔던 조선시대 한양의 피맛골 곳곳에 서려 있을 법한 옛이야기를 판타지와 결합시켜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으로 풀어냈다.

 

‘같아서 다정하고 달라서 사랑스러워’라는 극중 노래 가사처럼 작품 전반의 얼개는 ‘퓨전’이다. 어설프게 섞어놓았다간 따로국밥이 되기 십상이지만 제작진은 전통과 현대의 결합을 짜임새 있게 구축했다. 국악이 가미된 30인조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선율은 귀에 콕콕 박히고, 한국 무용과 현대무용, 재즈댄스와 힙합이 혼합되어 박력과 에너지가 뚝뚝 떨어지는 안무는 이 작품의 백미다. 시공을 넘나드는 무대 전환은 매끄럽고, 결코 해피엔딩으로 보기 힘든 스토리는 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연출로 따듯하게 마무리된다.

 

살구나무 정령인 행매를 통해 이어진 김생과 홍랑의 이승에서의 애절한 사랑이 그려진 1막과, 이승과 저승 어딘가에 있는 미지의 세계에서 마치 인간처럼 행동하는 쥐들이 등장하는 2막은 다소 어긋나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이야기의 단절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쥐라는 존재는 서출이라 손가락질 받는 김생의 신분과 겹쳐지고, 김생에게 은혜를 갚고자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을 자청하는 쥐들의 이야기는 ‘보은(報恩)’이라는 한국적 정서와 만나 김생과 홍랑이 재회하는데 자연스러운 연결 고리로 작용한다. 또한 1막의 정서인 자유연애와 2막의 정서인 인귀 교환(人鬼交歡)은 작품의 모티브가 된 김시습의 ‘이생규장전’의 구성과 일맥상통하여 흥미롭다.

 

관객을 압도하는 양희경, 박은태, 조정은 주연 배우 3인방의 가창력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고, 앙상블의 호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의 미덕이다. 뮤지컬에서 앙상블은 작품의 전체적인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주연 배우가 제아무리 호연을 펼치고 넘버와 안무가 훌륭한들 이를 받쳐주는 앙상블이 형편없다면 그 작품은 끈 떨어진 연이요, 노 잃은 사공 신세일 수밖에 없다.

 

‘피맛골 연가’는 앙상블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보통 대극장 앙상블의 평균수는 20~30명 정도인데 비해 ‘피맛골 연가’의 앙상블은 40명이 넘는다. “주인공인 김생과 홍랑의 사랑 뿐 아니라 피맛골 곳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가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희성 연출의 설명이다. 연출의 의도대로 ‘피맛골 연가’의 앙상블들은 대극장의 넓은 무대를 빈틈없이 메우며 신분과 성별, 나이를 초월한 다채로운 사랑 놀음으로 관객을 즐겁게 한다.

 

‘피맛골 연가’의 앙상블에는 각각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클레오파트라’, ‘소나기’의 타이틀롤이였던 오소연, 박란, 이승원을 비롯해 주역 못잖은 선 굵은 노래와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박성환, 김성민 등 공연 마니아들에게 낯익은 배우들이 수두룩하다. 이들 모두가 묵묵히 무대 구석구석에서 제 몫을 다하며 작품에 깨알 같은 재미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창작 초연 멤버로서 작품의 모범 답안을 만들고 싶다(오소연)”, “배우는 것이 너무 많다, 돈을 받고 학원에 다니는 느낌이다(박란)”, “무대에서 처음으로 몸을 쓰는 법을 배웠다(김성민)” 등등의 멘트에서 알 수 있듯 앙상블들에게 ‘피맛골연가’가 주는 의미 또한 남다르다.

 

커튼콜 무대에 선 배우들의 눈빛에서 작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보일 때, 무대에 스며있는 제작진의 땀방울과 정성, 열정이 느껴질 때 나는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피맛골 연가’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토종 뮤지컬의 희망을 보여준 ‘피맛골 연가’가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작업을 통해 서울을 대표하는 뮤지컬 레퍼토리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조수현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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