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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침묵과 헌신으로 지켜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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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침묵과 헌신으로 지켜낸 사랑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애절한 짝사랑의 순애보,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10.27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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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빅톨 위고는 ‘크롬웰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창조된 모든 것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추함 곁에 아름다움이, 기형 곁에 우아함이, 그로테스크가 숭고함의 이면에 존재한다. 악은 선과 더불어, 어둠은 빛과 더불어 존재할 것이다’라고.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보이는 것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안고 관객을 찾아간다.

 

17세기 파리를 활보했던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르쥬락(1619~1655)은 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담대한 인물로 기억된다. 또한 호방하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 독설가, 해학이 넘치는 코미디 작가, 17세기 공상여행소설가로 알려졌다. 당대 최고의 검술가이기도 한 그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 ‘달타냥’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200여년 뒤, 작가 에드몽 로스땅은 그에게 애절한 짝사랑에 스러져간 인물 '시라노'로 숨을 불어넣었다.

 

극중에서 문무의 재능을 겸비한 호쾌한 귀족, 청년장교 시라노는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사촌 록산느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한다. 하지만 기형적인 거대한 코를 가진 추남인 자신의 감정을 전할 수가 없다.

록산느는 크리스티앙의 외모와 시라노의 섬세한 감수성에 무서운 속도로 빠져든다. 이에 시라노는 소설적 주인공 안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깨닫고 무서운 전율을 느낀다.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비극적인 드라마를 웃음으로 포장해 울림을 증폭시킨다. 또한 극은 풍자와 아이러니가 가득하다. 아름다운 정신을 추구하는 록산느는 진정한 내면의 아름다움이던 시라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가 크리스티앙의 잘생긴 외모에 반하고 시라노는 추한 외모 때문에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이러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것도,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의 안전을 부탁한 것도 의문이다. 크리스티앙이 시라노의 힘을 빌려 록산느와 결혼한 것, 록산느가 평생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해놓고 두 번씩이나 잃는 것은 관객에게 공허함을 안긴다.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은 웃음과 눈물을 보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늘 진실은 아니고, 진실이 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극의 주제를 일깨워 준다.

 

작품이 무대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은 시라노라는 인물이 우리가 꿈꾸는 보편적인 사랑, 지고지순한 사랑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시라노는 철저한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의 사랑을 완성한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 순간 록산느에게 “내 마음 한 순간도 그대 곁을 떠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관객을 감동시킨 건 잘생긴 외모나 미사여구의 말솜씨가 아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킨 사랑과 침묵, 헌신이 관객의 가슴을 감동으로 먹먹하게 한다. 아름다운 시구에 실린 코쟁이 시라노의 지독한 짝사랑은 온 삶을 모두 지나고 나서야 끝이 난다.

 

연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오는 11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뉴스테이지 전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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