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공연계는 여러 부침 속에서도 양적 질적으로 꾸준히 성장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마술, 즉 매직쇼(Magic Show)라는 장르가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공연하면 주로 떠오르는 장르를 묻는 질문에 마술을 먼저 이야기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터. 이 같은 현실에 마술의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 온 한국의 대표 매지션(Magician) 이은결이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이은결의 ‘더 일루션(The Illusion).’ 이는 2001년 스무 살 약관의 나이에 일본 UGM 세계 매직 대회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린 이래 세계 유수의 매직 페스티벌에서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며 활발히 활동하던 이은결이 병역으로 인한 3년의 공백을 깨고 기획한 프로젝트. 10년 넘게 쌓아온 그의 노하우와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무대다.
이번 무대는 단순한 매직쇼가 아니다. 총 제작비 20억원, 대형 컨테이너 10개 분량의 마술 도구,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첨단 특수효과, 뮤지컬을 보는 듯한 무대 연출 등 거대한 스케일의 라이브 엔터테인먼트쇼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매지션 데이비드 카퍼필드와 팝스타 마이클 잭슨,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의 무대를 연출한 돈 웨인이 아트디렉터로 참여했다.
쇼는 순간이동, 신체 절단, 공중 부양 등 흔히 마술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트릭으로 문을 연다. 이어지는 이은결의 8년지기 마술 동반조 앵무새 ‘(싸)가지’의 활약은 다소 경직돼 있던 관객을 무장해제 시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은결이 전하고 싶은 무대가 펼쳐진다. 인터미션에 등장한 미디어 아티스트 정영두가 그려낸 이은결 그림은 2부 시작과 동시에 실제 이은결로 변신한다.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이 시작된다. 로맨틱한 모션그래픽으로 구현한 프러포즈 이벤트 ‘Destiny of Love’와 어린이들이 즉석에서 무대에 오르는 ‘스노우맨’은 “마술이란 상상, 꿈, 소망 등을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게 해 주는 것”이라 믿는다는 이은결의 바람과 함께 훈훈한 감동을 전한다.
이번 무대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은결의 ‘손’이었다. 군 제대 직후 사진작가 김중만과 함께 떠난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통해 어린 시절 꿈꿨던 환상을 담아왔다는 그는 오직 손과 조명만 사용한 그림자 매직 ‘아프리카의 꿈’을 통해 무대에 야생의 아프리카를 가져다놓았다. 오랜 시간 ‘핑거 발레’로 단련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은 아프리카의 온갖 동물과 사람으로 변신하고 삐죽 솟은 번개머리는 아프리카의 초원이 된다. 그의 손은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이은결표 매직의 정수다.
이은결은 공연 타이틀에 매직쇼를 붙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기존의 마술의 개념이 넓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술의 본질은 트릭이 아닌 상상이며 관객들에게 꿈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개그맨을 꿈꾸던 소년이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배웠던 마술은 그저 눈속임이 아닌 환상이었고, 청년이 된 소년은 속이기 위함이 아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마술을 한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마술은 사기 아니냐고. 네, 마술은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그 한 순간의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저는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겠습니다.” 이은결, 그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는 매지션이자 감동을 주는 환상술사다.
(12월 4일까지. 서울충무아트홀 대극장/ 12.18~12.19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12.25~ 12.26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12.31~2011.01.01 제주국제컨벤션센터 탐라홀/ 2011.01.08~ 2011.01.09 마산 3.15 아트센터 대극장)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조수현(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