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 만에 영화 현장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의 신작 '밀양'이 1일 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영화 '밀양'은 남편이 죽은 후 아들 준과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을 찾아온 신애(전도연 분)와 그를 짝사랑하는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의 삶의 한때를 담았다. 아들 준마저 유괴돼 죽은 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에 시달리는 신애가 신을 의지한 채 새 삶을 사는 듯하지만 그것은 허상이었을 뿐, 이미 신께 용서받았다는 가해자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고, 이런 신애 곁을 종찬이 줄곧 감싼다.
이 감독은 서울극장에서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988년 읽은 이청준 선생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가 작품의 토대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스토리는 많이 다르지만 거기에서 던져진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문제가 꽤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었고, 그것이 오랜 세월 내 안에서 싹을 틔운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밀양'은 '벌레 이야기'와 설정이 비슷하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 원장이 유괴범인 데다 아이 엄마가 하나님께 의지하다 너무도 편안한 가해자의 모습을 보고 더 큰 방황을 한다. 이 작품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하자고 나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비유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에서도 종교 문제를 건드렸던 이 감독은 "'박하사탕' 때 한국의 일상적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으려고 했고, '오아시스' 때도 종두가 기도를 외우며 달아나는데 이는 하나님이 종두를 풀어줬다는 설정이었다"고 설명하며 지나친 종교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이번에는 어찌 보면 종교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이를 관객과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종교의 신이 아니라 초월자, 절대자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지만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전 스태프가 조심스럽게 촬영했는데, 목회자나 신자들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이해를 해줬고 목사님이 직접 출연해주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밀양'이라는 제목을 쓴 것에 대해서는 "영화 속 신애의 대사처럼 '비밀의 햇볕'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 영화 속에서 담고자 하는 것을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며 밀양이라는 도시가 한국의 평범한 도시이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괴라는 큰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 것에 대해 이 감독은 "극단의 상황에 몰린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인간에게 특별히 극단의 고통을 가할 건지 생각했는데, 한 어머니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아픔의 유형이 유괴로 인해 자식을 잃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신애는 자식을 잃은 뒤 새로운 희망이었던 신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전 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죠.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신이 뭔가를 하지도 않았는데 신애 스스로 신의 뜻이라 해석했다가 신이 배반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신의 뜻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다만 '비밀의 햇볕'처럼 숨어 있겠고, 신애도 살면서 언젠가는 만나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희망이나 구원은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감독은 "내 몸에 피가 돌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구원이고 기적이 아닐까"라고 반문하며 "나머지는 관객마다 느끼는 게 다를 것"이라고 4년 만에 선보인 '밀양'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전했다.
'밀양'은 24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