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인지 호기심에 한 두번 들르는 곳은 있지만 ‘단골’을 자청하게 되는 음식점은 별반 없다. 장수보쌈은 연흥극장 뒤편에 줄지어 있는 음식점들 사이에 끼여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두 눈 크게 뜨고 ‘장수보쌈’이란 단어를 마음 속으로 주문 외우듯 웅얼거리며 두리번거려야 겨우 ‘짠!’하고 나타날 정도다.
겉모습에도 연륜이 느껴지는 것이 간판도 ‘장수보쌈’이다. 이름처럼 한곳에서 32년씩이나 장수한 보쌈집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 된 향수가 곳곳에 가득 배여 정겹다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언니들, 몇 명이야?” “언니들~! 여기 앉아.” 몇 년이라도 알고 지냈다는 듯 말을 건네 오는 푸짐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마치 부모마냥 하나 하나씩 참견해가며 맞이한다.
이곳에 오면 나이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언니’ ‘삼촌’이 되는데 단골이 되면 주인 아주머니의 ‘오빠’가 되는 특혜를 얻을 수도 있다. ‘오빠’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인지 이곳에는 유독 ‘오빠’ 단골들이 많다.
메뉴는 같은 보쌈이라도 ‘장수보쌈’ ‘배추보쌈’ ‘모듬보쌈’으로 나눠져 있다.
둘이서 먹을 경우 장수보쌈 中자 정도 시키면 되고 3~4명이 갔을 경우 모듬보쌈이나 장수보쌈 大자를 시키면 된다. 모듬보쌈의 경우 소금에 절인 배추와 무채, 그리고 보쌈김치, 생굴, 오이 당근 등의 야채가 곁들어 나온다.
도대체 어떤 비결이 있길래 한 달에도 음식점이 몇 개씩 생겨났다 없어지는 이곳에서 32년씩이나 장수할 수 있었던 걸까?
우선 이곳 보쌈 고기는 자로 딱 잰 듯하게 나오는 일반 체인점과는 비계고 살코기고 간에 대충대충 듬성듬성 잘라 내오는데 고기는 두툼하면서도 제 멋대로 생겼다.
게다가 그나마도 이리저리 층층이 쌓아져 있어 언뜻 보면 ‘어라, 양이 너무 적은 거 아니야?’ 싶다. 하지만 먹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양에 허리띠를 끌러놓기 일쑤고 소주 2~3병도 너끈하게 곁들일 수 있는 양이다. 대충 잘라 나온듯한 고기는 두툼하면서도 씹는 맛이 누린내가 없어 담백하게 느껴진다.
보쌈의 하이라이트 ‘김치’는 어떨까. 최상급 배추와 고춧가루만 사용하여 만든다는 보쌈 김치는 잣, 밤, 배, 그리고 굴을 넣어 만들었는데 양념이 착 달라붙어 있으면서도 아삭한 맛이 압권이다. 게다가 제철 맞은 신선한 굴까지 입 안에서 확 터지면서 시원하게 퍼지는 맛이 일품이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무한 리필 ‘배추된장국’도 먹음직하다.
연애 초기,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떠는 내숭은 이곳에서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상추에 고기 한 점, 보쌈김치 위에 굴 한 점 슬쩍 걸친 후 새우젓으로 마무리해 한 쌈 가득 입 안에 넣고 있으면 맞은 편에 앉은 연인은 옷 주워입고 나간다.
출처:한겨레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