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에서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임 모 사장은 최근 자동차를 '에쿠스'에서 '재규어'로 바꿨다.
부모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아 30대 중반부터 기업을 경영해 온 임 사장은 지난 30여년동안 국산 자동차만 고집해왔다.
애국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과급 50% 추가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기아차 노조의 모습을 보곤 마음이 싹 바뀌었다. 자신의 애국심이 귀족노조원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분노 때문이었다.
임 사장은 "에쿠스에 비해 재규어 가격이 3000만원 정도 비싸지만 재규어는 경유차인데다가 연비가 좋아서 유지비가 에쿠스의 절반 정도밖에 들지 않아 몇년만 타면 차액을 건질 것"이라며 "기아차 노조가 수십년간 기울여 온 소비자들의 애정과 기대를 한꺼번에 짓밟아 버렸기 때문에 외제차를 타는 데 대한 거부감이나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서울 가리봉동에서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을 하는 또 다른 중소기업의 구 모 사장도 얼마전 에쿠스차를 '렉서스' 최고급형으로 바꿨다.
외제차를 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남의 이목도 있고 공장직원들의 눈도 무서워 지난 15년동안 기아 '엔터프라이즈'→현대 '그랜저'→현대 '에쿠스' 등으로 차를 바꿔오다 이번에 1억5000만원짜리 렉서스로 바꾼 것.
구 사장은 "1~2년전만 해도 외제차, 더욱이 일제차를 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요즘 주변 사람들이 노조꼴 보기 싫어서라도 외제차 타겠다며 너도 나도 바꾸는 바람에 나도 소원풀이를 했다"며 "예전과 달리 일본차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거의 없고 주차장에 세워놔도 긁거나 파손되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만족해 했다.
현대ㆍ기아차 노조에 대한 반감의 표출로 외제차를 구매하는 '보복형'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 노조가 수십년간 지속돼 온 외제차 거부감을 일시에 걷어내고 소비자들의 국산차 충성도를 급속도로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많고 보수적인 고급 대형차 소유자들 사이에서 이같은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노조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수입 자동차 딜러인 박성용씨는 "그동안 고급 수입차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별로 눈치 볼 것 없는 자영업자들이 많이 구매해 왔는데 최근에는 외제차 거부감이 거의 사라지면서 중소. 벤처기업 경영자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면서 "현대ㆍ기아차 하청업체 경영자중에서도 보복심리로 부인명의의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들어 수입차 판매량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총 2만5495대의 수입차가 신규 등록돼 1987년 수입차시장 개방 이후 처음으로 기록했던 ‘상반기 2만5000대 신규등록’ 실적을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수입차 5만대 돌파도 확실시되고 있다.
2004년 2만3345대가 국내에 팔렸던 수입차는 2005년 3만901대, 지난해 4만530대 등 매년 1만대 가까운 판매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심했던 도요타 렉서스와 혼다의 CR-V 등 일본차가 올 상반기 외제차 베스트카 1, 2위에 나란히 등극하는 등 일본차의 판매가 급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는 점이 소비자들의 국산차 충성도 와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이같은 '민심이반'도 노조에게는 '강건너 불구경'에 불과하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8.9%의 임금인상과 상여금 200%지급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에 들어가 23일까지 2300여억원의 손실을 발생시켰다.
기아차는 지난해 2분기부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 올해 1분기까지 연속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도 소비자도 안중에 없는 노조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계속되는한 소비자들의 보복형 구매는 더욱더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