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정된 숙소는 당연히 '1인 1실'이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언론인에게 '2인 1실'을 배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랬으니 숙박비만 따져봐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숙박비를 지불하는 기자는 없다. 기자에게는 숙박비 역시 공짜다. 누군가가 대납할 것이다.
그랬는데도, 그 비싼 호텔 객실에서 잠을 잔 기자는 절반 정도뿐이었다. 나머지 기자들은 객실 한곳에 모여서 밤새도록 고스톱을 쳤거나, 또는 엉뚱한 장소에서 '배설의 본능'을 충족시킨 것이다.
늦었으니 저녁식사는 생략하기로 했다. 곧바로 방석집으로 향했다. 방석집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정이다. 그것도 고급 요정이다.
방석집에서는 이미 준비를 끝내고 늦게 도착한 귀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파트너'도 머릿수만큼 대기하고 있었다. 손님은 서울에서 내려오신 귀한 언론인이다. 잘 대접해야 했다. 그러니 '파트너'도 당연히 '얼짱'이나, '몸짱'이어야 했다. 귀한 손님의 눈에 덜 차는 '파트너'는 그 자리에서 퇴짜를 맞는 경우도 가끔 있는 것이다.
술판이 벌어졌다. 귀한 손님이었지만, 행동은 귀한 손님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폭탄주가 돌고, 밴드가 울리고, '파트너'를 끌어안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들을 뽑았다. 고급 양주가 수십 병이나 사라졌다. 덜 취해보겠다며 슬그머니 쏟아버린 양주까지 포함하면 그렇다.
술값은 누가 냈을까. 물론 술값을 낸 기자는 없다. 기자에게는 술값 역시 공짜다. 술값뿐 아니다. '파트너'에게 주는 '꽃값', 밴드에게 주는 '돼지 멱따는 소리값'을 낸 기자도 없다. 하다 못해 술자리에서 담배가 떨어지는 바람에 주문한 담뱃값마저 내지 않았다. 모든 부담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모처럼 부산에 왔으니 유명한 '완월동' 구경을 빼먹을 수 없었다. 고스톱을 친다며 호텔로 돌아간 기자들을 제외한 몇몇 기자들이 '완월동'을 외쳐댔다. 기자들이 가겠다고 우기는데 거절할 만한 강심장은 없다.
밤늦은 시간까지 대기하고 있던 지역 금융기관의 승용차를 나눠 타고 '완월동'으로 달려갔다. 운전기사가 힘들다고 불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들의 귀에는 불평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늦게 도착한 기자들을 기다리고, 방석집에서 대접하고, '완월동'까지 함께 가야하는 지역 금융기관 관계자들의 지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이처럼 눈과 귀가 막힐 때도 있다.
어쩌면, 기자들에게 그 정도의 '민폐'는 당연한 것이다. '완월동'의 '꽃구경'과, 희한한 '눈요기'도 따지고 보면 '취재'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완월동'이 술주정뱅이로 가득 차서 흥청망청한다면 지역경제가 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분위기가 썰렁하다면 지역경제가 그만큼 어려운 셈이 된다. 이런 '중요한' 취재를 하는 마당에 약간의 '민폐'는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정도의 취재도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기자생활을 못해먹을 것이다. 물론 '궤변'이다.
취재는 이렇게 끝났다. 간사가 나눠준 '출장비'인지, '취재비'인지에는 손도 대지 않고 취재를 마친 것이다.
약간의 취재비를 지출한 기자가 없지는 않다. 어떤 기자가 아내에게 선물한다며 이튿날 '자갈치시장'에 가서 생선을 가방 가득 산 것이다. 무겁다고 쩔쩔매면서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 큰 가방을 소중하게 들고 다녔다.
그러니 전체 기자들이 들인 취재비는 큰 가방 하나와 생선 사는 데 쓴 돈이 전부였다. 다른 기자들도 고스톱판에서 잃은 돈을 제외한다면, 취재비를 고스란히 남겼다. 돈을 딴 기자들은 취재비를 오히려 '늘렸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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