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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11>'뜻깊었던' 백제유적지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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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11>'뜻깊었던' 백제유적지 출장
  • 정리=김영인 기자 kimyin@consumernews.co.kr
  • 승인 2007.07.31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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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투 기자의 지방출장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덕분에 퍼마시고 놀 만한 곳은 거의 다녀볼 수 있었다. 어지간한 대도시는 물론, 조금 작은 도시까지 샅샅이 뒤지고 돌아다녀 본 것이다.

    역시 198x년. 신록이 익어 가는 봄날이었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기자실에 모여서 '작당'을 했다. 이번 출장만큼은 뜻깊은 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협의했다. 무미건조한 출장보다는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출장을 가보자고 협의한 것이다.

    이곳저곳을 거론한 끝에 아이디어가 모였다. 역사공부도 할 겸 백제의 유적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기자다운 출장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였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운 곳은 이동하는 재미가 없다며 제외하기로 했다. 출장이라면 그래도 차를 타고 몇 시간 정도는 달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선정한 곳이 백제 문화의 본고장인 '부여'였다.

    장소가 결정되었으니, 나머지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똑같았다. 각자 충남지역의 경제를 취재한다고 신문사에 보고했다. '콜'을 하고, 분배를 했다. 공보실장이 뒷바라지를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당시의 부여는 '무관의 제왕'을 모시기에는 시설이 조금 미흡했다. 그럴 듯한 호텔도 없었고, 방석집도 없었다. '급'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무관의 제왕'들이 한번 결정한 일이었다. 장소를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현지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의 준비를 갖추기로 했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우선 대전으로 내려갔다. 대전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부여로 출발하기로 했다. 부여의 시설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좋기로 소문난 음식점이 예약되어 있었다.

    음식점은 좋았지만, 음식점 주인이 좋지 못했다. 주인의 눈에는 기자들의 나들이 복장이 자신의 고급음식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더구나 기자들은 마치 자기 집이라도 온 것처럼 안하무인으로 떠들썩하게 굴었다.

    주인은 자기가 대전지역의 어떤 기관장, 서울의 어떤 정치인과 잘 통한다는 등 은근히 '끗발'을 자랑했다. 이 말을 듣고 참을 기자가 아니었다. 한 기자가 대뜸 따귀를 올려붙였다. "그 xx 당장 불러와 봐." 김봉투 기자 일행은 이렇게 음식점 주인보다도 '끗발'이 한 수 이상 높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부여에 도착했다.

    이런 호기는 부여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백제 땅에 왔으니 의자왕 흉내라도 내보자는 듯 호기를 부렸다. 파트너가 모자란다며 '파트너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파트너는 부족했다. 좁은 바닥에서 어떻게 순식간에 파트너를 긁어모을 것인가. 이곳저곳에서 있는 대로 불러모을 수밖에 없었다. 근처 음식점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파트너로 호출되고, 다방에서도 호출되었다.

    '춘향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변 사또가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는 장면이다.
    "…춘향다려 분부하여 일은 말이, 몸단장 정히 하고 오날부터 슈쳥하라. 슈쳥하면 관청고(庫)이 네 반찬고(庫)이 될 거시요. 관슈미(官需米)가 네 곳집이 될 거시요. 관고(官庫) 돈이 네 돈이 될 거시니, 잔말말고 슈쳥들라.…"

    '역사의 도시' 부여에 온 탓인지 김봉투 기자 일행은 파트너에게 이런 수작들을 걸었다. 의자왕 흉내가 아니라 변 사또 흉내였다. '수청'을 들면,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생색을 내주겠다는 수작까지 똑같았다. '무관의 제왕'들이 파트너들을 모조리 숙소로 '공식' 초청한 것이다.

    하지만 파트너들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갑자기 호출되는 바람에 미처 준비가 덜 되었으니, 숙소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1시간 내에 오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날 밤 초청에 응한 파트너는 아무도 없었다. 감히 '무관의 제왕'의 정중한 초청을 뿌리친 것이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단체로 '바람'을 맞고 말았다.

    "춘향이 아뢰되, 죽으면 죽사와도 분부 시행 못 하것나이다.…네 무슨 말하는다. 이졔 밧비 슈쳥들라.… 춘향이 또 아뢰되, 사또님은 세상이 변하오면 무릅을 꿀러 두 임금을 섬기려 하시나잇가.…"

    이것이 '뜻깊었던(?)' 출장이었다. 백제 유적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본 것은 이튿날 1시간 남짓이었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더구나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두들 문외한이었다. 문화 담당 기자들은 따로 있었다. 그러면서도 김봉투 기자는 부여 외에도 경주, 진주, 전주 등 역사 깊은 곳을 두루 헤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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