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투 기자는 또한 그 많은 '지방출장'을 다니면서도, 신문사에서 '출장비'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기자가 먼 지방까지 가서 취재를 하겠다면 신문사에서는 취재비를 지급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신문사는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 김봉투 기자가 달라고 요청한 적도 물론 없다. 그런 면에서 신문사라는 조직은 희한한 조직이다.
그런 김봉투 기자에게 '기사를 쓰는 출장' 기회가 왔다. 놀러 다니는 출장이 아니라 기사를 써야 하는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여러 건이나 써야 하는 출장이었다. 다름 아닌 '세미나' 참석이었다.
198x년 여름. 어느 조그만 단체에서 보낸 공문 하나가 김봉투 기자의 신문사에 접수되었다. 정계의 거물과, 재계의 거물, 주한 미군부대의 거물 등이 여럿이나 참석하는 세미나가 열릴 예정이니 취재를 협조해달라는 공문이었다. 이들이 정치 현안과, 경제 현안, 한미 관계 현안 등을 강연할 예정이라고 했다. 기사거리가 충분히 될 만한 세미나였다.
장소는 설악산의 유명 호텔이었다. 참석에 따른 경비는 자기들 단체에서 모두 부담한다는 조건이었다. 돈 안 드는 '공짜 취재'였다. 돈이 안 든다면 취재해볼 만했다. 신문사는 김봉투 기자에게 '출장 명령'을 내렸다. 돈이 드는 출장이었다면 신문사는 '출장 명령'을 아마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휴가철인 8월 초였다. 8월 초의 설악산 호텔은 휴가를 간다면 제격이었다. 세미나 일정은 5박 6일이나 되었다. 김봉투 기자의 신문사를 포함, 모두 5개 신문사가 기자를 참석시켰다.
세미나라는 것에 참석하면, 강사의 강연 내용이 대부분 미리 '보도자료'로 나온다. 기자들은 그 자료를 보고 기사를 써서 신문사로 송고하면 된다. 강연장까지 들어가서 강연 내용을 들으며 일일이 메모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설악산 세미나도 그랬다. 주요 참석자들의 강연 원고가 기자들에게 미리 배포되었다. 기자들은 기사를 써서 신문사로 보내놓고, 설악산의 여름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참석한 기자들은 모두 그렇게들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차질이 생겼다. 정계, 재계의 몇몇 거물이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일부 거물은 강연 당일 아침에 불참한다고 통보해오기도 했다. '대타(代打)'로 다른 사람을 보내기도 했다. '조그만 단체'와 거물과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았다.
세미나가 엉망이 되었고, 주관한 단체는 사색이 되었다. 거물 인사의 강연을 들으려고 비싼 참가비를 내고 온 사람들은 주관 단체에 항의하기도 했다. 단체 관계자들은 사태를 수습하는 데 온통 매달렸다. 전화통과 씨름을 해가며 거물들과 연락, 한두 사람을 늦게나마 참석하도록 교섭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차질이 생겼다. 세미나 내용을 신문에 실어서 '홍보'해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자들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것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무관의 제왕'을 빠뜨리면 될 일도 틀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무관의 제왕'이 참을 까닭이 없었다. 아무리 작은 단체라고 해도, 무관의 제왕이 참석했으면 이에 상응하는 대접을 하는 것이 예의였다. '낑'도 내놓고, 저녁이 되면 술도 그럴 듯하게 사는 것이 도리였다. 이 단체는 발등의 불을 끄는 데 급한 나머지 본의 아니게 기자들을 소홀하게 했던 것이다.
기자들은 '붓 든 깡패'라고 했다. 한 기자가 곧바로 붓을 휘둘렀다. '붓'의 위력을 유감 없이 발휘, '가십기사'를 신문사로 보낸 것이다. 거물을 참석시킨다는 거짓말로 비싼 참가비만 긁어모아 빈축을 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자는 그리고 시치미를 뗐다. 설악산까지 신문이 배달되려면 한참 걸렸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가십을 쓴 사실을 모두들 알게 되었다.
조그만 단체는 예산이 빠듯하면서도 기자들이 설악산의 고급 호텔에서 숙식할 경비를 모두 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기자는 그런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가십기사'로도 모자랐다. 손바닥만한 활자로 긁어버리겠다고 겁을 줬다. 취재를 그만두고 철수하겠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단체 관계자들은 난감했다. 기자에게 사정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 이 단체의 세미나 기사는 별로 보도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고급 호텔 숙박비용만 아깝게 날린 셈이 되었다.
당시 '가십기사'를 쓰고, 큰소리를 쳤던 기자는 오늘날 '참여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며 '개혁'을 외치고 있다. 목소리에 힘도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참여정부의 개혁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