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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촌지실록'<20>記者, 欺者, 忌者, 棄者, 騎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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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촌지실록'<20>記者, 欺者, 忌者, 棄者, 騎者
  • 정리=김영인 기자 kimyin@consumernews.co.kr
  • 승인 2007.07.31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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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기사를 쓴다. 그래서 '기자(記者)'다. 그런데 기자가 기자답지 못하게 '낑'에 눈이 멀어 엉뚱한 것이나 찾아 헤매고 다닌다면, '기자(欺者)'가 될 수밖에 없다. 거짓말 기자다. 가짜 기자다.

그런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 '기자(忌者)'다. 기피대상이 되는 기자다. 그런 기자는 또한 '기자(棄者)'이기도 하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기자다.

기자는 또 있다. 기자도, 기자도, 기자도, 기자도 아닌 '기자(騎者)'다. 경마장에서 말을 타는 기자가 아니다. 말이되 말 나름이다. 아주 특별한 말을 타는 기자다. 기자 중에는 '공짜 말'을 타려고 하는 기자도 있다.

이 여러 종류의 '기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기자근성'이라는 것이다. 기자 가운데에서도 근성이 있는 기자(記者)는 악착같이 기사를 취재한다. 한 줄 짜리 '단신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밤을 꼴딱 새우기도 한다. '낑'과 타협하지 않고 취재한 것을 기사로 옮긴다. 그런 것이 '기자근성'일 것이다.

'기자(記者)'가 아닌 '기자'에게도 '기자근성'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름만 '기자근성'이다. 실상은 어쩌면 '거지근성'이다. '나라 안팎'에서 주머니가 터지도록 받아 챙긴 '낑'으로도 모자라 해외에서까지 '슈킹'을 하는 기자다. 주머니가 항상 넘치지 않으면 어딘가 불안해지는 '거지근성'이다.

김봉투 기자와 그 일행이 그랬다. 여러 종류의 기자노릇을 한꺼번에 한 것이다.

국제회의의 일정은 희한했다. 김봉투 기자 일행에게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정이 되고 만 것이다. 아침이 되면 김봉투 기자 일행은 '출입처와 출입처 주변' 사람을 만나 식사를 했다. 아침부터 열대 과일이 한 바구니나 쌓여 있는 '진수성찬'이었다. 대체로 하루는 '출입처' 사람들, 다음날은 '출입처 주변' 사람들과 식사를 했다. 그들은 번갈아 가면서 해외까지 날아온 '무관의 제왕'을 모신 것이다.

식사를 하고 호텔 객실에서 담배를 물고 잠시 쉬고 있으면 전화가 울렸다. 자동차가 대기 중이라는 전화였다. '출입처와 출입처 주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운전석에서 기다렸다. 김봉투 기자 일행을 태우고 관광을 시켜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자동차는 관광코스 중에서도 멋진 곳만 골라서 굴러갔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가끔 차를 세우고 '증명사진'을 찍었다. 일행이 함께 사진을 찍을 경우에는 그 운전사가 사진사 역할까지 했다.

관광 중에 먹는 점심식사 역시 '진수성찬'이었다. 그럴 듯한 음식점을 찾는 것도 관광코스 가운데 하나였다. 티를 내기 위해 먼길을 돌아가며 '한국식당'을 찾기도 했다. 관광 안내 역시 '출입처'와 '출입처 주변' 사람이 번갈아 가며 담당했다. 마치 '무관의 제왕'을 모시는 '당번'이었다.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된다. 저녁에는 일정이 엇갈렸다. '출입처'와 '출입처 주변'의 장(長)과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첫째다. '무관의 제왕'들이 먼 곳까지 왔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장(長)이라 물론 바쁘다. 접촉해야 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정들이 빠듯하다.

그래도 '무관의 제왕'을 무시하면 안 된다. 대접이 소홀하면 '가십기사'라도 한 줄 신문사로 불러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좋을 것이 없다.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무관의 제왕'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는 근거를 남겨둬야 했다.

장(長)과 함께 이역만리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낑'이 빠질 수는 없다. 장(長)은 미리 봉투를 준비했다가 내민다. 물론 봉투 속에는 빳빳한 달러가 여러 장 들어 있다. 100달러 지폐가 틀림없다. 김봉투 기자는 소액권 달러를 '낑'으로 받아본 경험이 없다. '무관의 제왕'은 100달러 짜리 지폐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장(長)이 직접 저녁식사를 대접하지 못하게 되면 비서실장이 대신한다. 두 번째 경우다. 그럴 경우 곧바로 술집으로 달려간다. 술은 물론 양주다. 괜찮은 파트너가 빠질 수 없는 술집이다. 기자는 그러면 '기자(騎者)'가 된다. 특별한 말을 타는 기자가 된다. 국위를 선양하고, 태극기를 휘날리는 기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자기 돈으로 '말값'을 치르지는 않는다. 장(長)이 직접 집행하지 못한 '낑'을 비서실장이 대신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도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해서 유감이라는 정중한 사과와 함께 전달한다. 기자들은 그 돈으로 '말값'을 지불하면 된다. 지불하고도 한참 남을 만한 '낑'을 받았기 때문에 그까짓 '말값' 따위는 푼돈이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국제회의가 열리는 동안 이런 짓만 골라서 했다. 그런데 하지 못한 짓이 하나 남았다. 우리측 대표를 면담하는 일이다. 좋게 표현하면 '인터뷰'다. 우리측 대표는 회의에 시달리는 바람에 '무관의 제왕'에게 시간을 내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인터뷰'를 요청했다. 우리측 대표는 마지못한 듯 시간을 내줬다. '인터뷰'라고 했지만, 기사를 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기사는 단지 명분이었다. 속셈은 '낑'이었다. 뻔했다.

우리측 대표 역시 기자들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해외에서 만난 '무관의 제왕'에게 차 한 잔으로 끝낼 만큼 눈치 없는 대표가 아니었다. 짧은 면담 끝에 다음 약속 때문에 바쁘다고 일어서며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해외에서도 '슈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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