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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21>'기자 지갑'은 '요술 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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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21>'기자 지갑'은 '요술 지갑'
  • 정리=김영인 기자 kimyin@consumernews.co.kr
  • 승인 2007.07.31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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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국제회의 일정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김봉투 기자 일행만 따로 떨어져서 여행을 즐길 차례가 되었다. 김봉투 기자 일행에게 밥 사주고, 술 사주고, 관광 가이드 해주고, 운전기사 역할까지 해줬던 사람들은 모두 귀국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김봉투 기자 일행은 앞으로도 열흘쯤 뒤에 나 귀국할 예정이었다.

김봉투 기자는 떠나기 앞서 마닐라 호텔에서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다. 안부 전화였다. 데스크에게 국제회의 일정이 끝났다고 보고했다. 이제 태국으로 날아갈 예정이라고도 실토했다.

데스크의 격려 비슷한 야유가 멀리서 들려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놀자판인가? 잘 놀다오게."

김봉투 기자는 내친김에 아내에게도 전화를 했다. 아내 생각을 끔찍하게 하는 자상한 남편인 척하기 위해서였다. 기자가 아닌 '기자(騎者)' 노릇을 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살결이 까맣고, 키가 작은 동남아의 '토종'을 파트너로 삼은 사실을 눈치채면 아내는 아마도 기절초풍할 것이었다.

신문사에 보고하기 위한 전화도, 아내에게 한 전화도 어디까지나 '공적'인 전화였다. 국제전화요금이 제아무리 비싸게 나와도 기자가 사용한 전화는 '기사'를 위한 공적인 것이었다. 그러니 기자에게는 전화요금 역시 '공짜'였다. 개인 부담이었다면, 김봉투 기자는 아마도 전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들끼리만 따로 떨어져서 여행을 한다고 해도 불편할 것은 전혀 없었다. 불안할 것도 물론 없었다. '출입처'에서 사전에 모든 조치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머니가 두둑했다. 그래서 느긋했다. 홍콩을 떠났을 때 800 달러 남짓했던 '여비'는 희한하게도 2,000달러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기자(騎者)' 노릇을 하며 적지 않게 뿌렸는데도 그랬다. 우리측 대표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낑' 덕분이었음은 밝힐 필요조차 없다.

기자들의 지갑은 돈을 꺼내도 저절로 두툼해지는 희한한 지갑이었다. 그것도 '한국 돈'이 아닌 '미국 달러'가 불어나는 지갑이었다. 마치 '요술 지갑'이었다.

태국의 방콕 공항에 도착하니 낯선 한국 사람이 '김봉투씨'라는 피켓을 들고 김봉투 기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하 기업의 직원이었다. '출입처'의 배려였다. '무관의 제왕'들이 혹시 이역만리에서 길이라도 잃지나 않을까 걱정된 나머지 산하 기업에 마중을 나가도록 지시했을까. 그럴 리는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 낯선 한국 사람은 한마디로 '봉'이었다. 낯선 한국 사람은 낯선 기자들에게 호텔 방을 빌려줬다. 낯선 기자들이 배고프면 밥을 사줬다. 술이 고프면 술을 사줬다. 출출하면 간식도 사줬다. 파트너가 고프면 파트너까지 사줬다. 말을 하고 싶으면 통역을 해줬다.

기자들이 관광을 하고 싶으면, 운전을 했다. 입장표를 끊어야 하는 곳에서는 총알보다도 빠르게 지갑을 열었다. 관광을 하던 기자들이 방콕의 더운 날씨 때문에 지친 기색이라도 보이면 날쌔게 청량음료를 사다가 '바쳤다'.

낯선 한국 사람은 기자들이 먼저 지갑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열도록 만들면 안 되는 것이다. 입장료나, 청량음료처럼 '푼돈'을 쓸 경우에도 기자들이 지갑을 열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낯선 한국 사람은 낯선 기자들이 고주망태가 되어서 호텔 방에 엎어져야 간신히 '퇴근'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 또 호텔로 '출근'했다. 낯선 기자들에게 아침밥을 먹여야 했다. 밤새 안녕하셨냐고 인사해야 했다.

낯선 한국 사람은 주말도, 휴일도 없었다. '사생활'마저 포기해야 했다. 높은 '출입처'에 출입하는 귀하신 기자들이어서, 낮은 산하 기업은 알아서 각별하게 모셔야 했다.

낯선 기자들은 낯선 한국 사람이 이렇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왜냐하면 낯선 기자들은 '무관의 제왕'이기 때문이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이렇게 호화판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관의 제왕'이 거꾸로 '봉'이 될 차례였다. 호텔 주인이 값싼 선물코너를 소개한 것이다.

'무관의 제왕'이 하찮은 물가까지 알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주머니에는 돈들이 넘치고 있었다. 값이 싸다고 소개하는 바람에 선물을 한 보따리씩 사서 챙겼다. 불필요한 물건까지 이것저것 구입했다.

그러나 선물코너는 호텔 주인이 경영하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파는 물건의 가격이 무척 비싸다는 사실을 귀국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바가지를 썼던 것이다. 낯선 '봉'을 만나 신나게 즐겼던 기자들이 도리어 '봉'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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