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손에 경전을 들고, 한 손에 칼을 든 것이 회회교(回回敎)라면, 한 손에 조선 민족을 두고, 한 손에 동경(東京), 대판(大板)의 상품을 들고 나가는 것이 동아일보(東亞日報), 아니 조선의 제(諸) 신문이다. 다만 그 마술에 가장 잘 성취한 것이 동아일보이다. 신문지의 판매를 위해서는 조선 민족을 팔아야겠고, 광고의 수입을 위하야는 동경, 대판 등지의 상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 조선 신문계의 '디렘마'이다.…"
오늘날에도 비슷하다. 신문사는 광고와 판매에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광고가 안 들어오고, 판매 부수가 줄어들면 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문의 기사와 광고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김봉투 기자가 뻔질나게 해외취재를 다니던 당시에는 국민의 '과소비'가 문제였다.
예를 들면, 바나나가 수입 자유화되자 수입업체들은 너도나도 바나나를 수입했다. 바나나를 팔아서 한몫들을 챙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수입되었다. 곧 남아돌더니 상하게 되었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싸서 먹어보기조차 힘들었던 아까운 바나나를 모조리 땅에 파묻어 버린 것이다.
언론은 이를 한심한 짓이라고 규탄했다. 사진까지 곁들여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면서 과소비를 억제하자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과소비가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자들을 계도했다. 언론다운 기능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론은 다른 한편으로는 수입상품 광고에 열을 올렸다. 수입상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수입업자들은 저마다 광고들을 했고 언론은 그 광고를 경쟁적으로 유치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소비 억제 캠페인' 기사 밑에 수입상품 광고가 버젓하게 실리기도 했다. 결국 기사로는 과소비를 억제하자면서, 광고로는 오히려 부추긴 꼴이 되었다. 독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론은 사교육비가 과다하다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설학원 광고를 실었다. 종합반이 어떻고, 입시반이 어떻다는 광고가 넘쳤다.
무분별한 해외여행 붐을 걱정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여행사 광고를 게재했다. 동남아 지역, 유럽 지역을 싸게 다녀올 수 있다는 광고들이 지면을 메웠다. '광고 면'이 넘치면 '기사 면'까지 광고로 채워지기도 했다. 독자들은 계속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신문사는 '무관의 제왕'을 수십 명, 수백 명씩 고용하고 있는 곳이다. 신문사가 없으면 '무관의 제왕'도 없다. 따라서 신문사는 '무관의 제왕'보다도 훨씬 막강하다. 힘이 센 기관이다. 그런 신문사가 기사와 광고의 내용을 좀 다르게 했다고 감히 시비를 걸 독자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신문사도 기업이다. 광고는 신문사 경영과 직결된다. 이런 광고, 저런 광고를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거절하고 나면 실을 광고가 없어진다. 경영에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돈이 되는 광고라면 받아서 실어야 한다. 광고가 없으면 '무관의 제왕'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게 된다. 독자들이 헷갈리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기자들도 그랬다. 기자들은 외국에 나가서까지 고스톱을 치는 못난 한국 사람들을 개탄하는 기사를 썼다. '고스톱 문화(?)'를 제발 좀 개선하자고 촉구했다. 해외여행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쳤다. 그것도 여러 차례나 썼다. 기획 시리즈로 다루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자들도 외국에 나가게 되면 고스톱을 즐겼다.
김봉투 기자도 그런 기자 가운데 하나였다. '태평양 상공'에서 고스톱판을 벌인 것이다. 그것도 떠들썩하게 자랑스러운 듯 판을 벌였다.
미국 뉴욕으로 가는 대한항공 여객기 안이었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화투부터 꺼냈다. 참을성도 없었다. 다른 승객들의 눈초리는 아랑곳없이 고스톱판을 벌였다.
지방출장 때와 비슷했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고, '싹쓸이', '피박'을 소리쳤다. 옆이나 앞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이 못마땅한 표정들을 지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나마 신발마저 벗어 던졌다. 양말바람으로 고스톱에 몰두했다.
지방출장 때와 한가지 다른 것은 '판돈'이었다. 지방출장 때처럼 '한국 돈'이 아니었다. '점 천'이 아니라 '점 1달러'였다. 1달러 짜리 돈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판에는 10달러, 20달러 짜리 지폐가 쌓였다.
물론 '한국 돈'도 인정했다. '한국 돈'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선물을 살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십 달러씩 잃은 기자들은 '한국 돈'을 꺼냈다. 쓸 일 많은 달러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환율은 따지지 않았다. 1,000원짜리를 무조건 1달러로 간주했다. '한국 돈'을 꺼낸 기자에게는 손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야 계산하기 쉽고, 고스톱을 치기 쉬운 것이다. 고스톱판에는 달러와 원화가 마구 뒤섞였다.
김봉투 기자는 일행 중에서 어느새 고참 기자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일행의 리더 노릇을 해야 했다. 일행 중에는 처음으로 해외출장을 하는 기자도 여럿 있었다. 후배기자들을 잘 이끌어야 했다. 하지만 김봉투 기자는 오히려 고스톱판을 주재하고 말았다. 나잇값도 못하는 기자였다. 철 좀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