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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24>- 라스베이거스'원정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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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 '촌지실록'<24>- 라스베이거스'원정 도박'
  • 정리=김영인 기자 kimyin@consumernews.co.kr
  • 승인 2007.07.31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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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애가라 폭포를 배경으로 찍은 '증명사진'들은 희한했다. 귀국하고 나서 찾아본 사진 속에 있는 김봉투 기자 일행의 입은 모두들 귀밑까지 찢어져 있었다. 경비행기 안에서 공포에 질렸던 표정들은 씻은 듯 사라지고 없었다. 비행기 속에서 조마조마했던 간덩이들이 어렵게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원위치'되었던 것이다.

김봉투 기자 일행의 간덩이는 마중 나온 사람들 앞에서부터 다시 부어 올랐다. 새벽 2시가 훨씬 넘어서 도착하는 바람에 마중 나온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지쳐서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미국 항공회사 때문에 늦은 것이지만, 경위야 어떻게 되었든 미안한 척하는 표정이라도 지어야 했다. 그 늦은 시간까지 '김봉투씨'라는 피켓을 들고 낯선 기자들을 기다려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하나같이 무뚝뚝했다. 누구도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기자들이 아무리 늦게 도착하더라도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당연했다. '무관의 제왕'은 도도하기 때문이다. 예의하고는 아예 담을 쌓은 기자들이었다. 마중 나온 사람들이 오히려 기자들에게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비록 미국 항공회사 앞에서는 '스타일'을 구겼지만, 마중 나온 '낯선' 사람들 앞에서마저 '스타일'을 구길 수는 없었다. 그들은 미국 사람이 아니었다. 한국 사람이었다. 그들로부터는 '무관의 제왕' 대접을 제대로 받아야 했다. 그것이 기자의 '특권(?)'이었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그런 특권을 마음껏 즐겼다. 나이애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증명사진'을 찍고, 흠뻑 마시고, 배터지게 먹었다. '2박 3일'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고 나니 캐나다에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돌아갈 일만 남았다. 다시 국경을 넘기로 했다. 미국으로 되돌아가서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를 '취재'하기로 했다. 일정이 그렇게 잡혀 있었다. 비행기를 또 한참동안 타야 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달려갔다. 아침밥을 먹고 출발했는데 도착하니까 어두컴컴했다. 그렇게 멀었다. 점심 때 약간 우물거린 것을 제외하면 줄기차게 달렸는데도 그랬다. 비행기로도 한 시간 넘게 날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미국은 넓었다.

먼데다가 넓었으니, 경치를 특별하게 구경할 만한 것도 없었다. 사막지방의 경치는 무미건조했다. 자동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짓이란 얘기하지 않아도 뻔했다. 또 고스톱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할 도박의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김봉투 기자 일행은 고스톱으로 시간을 '죽였다'.

하기는, 라스베이거스에 일찍 도착할 이유도 없었다. 라스베이거스는 느긋하게 도착해야 좋은 곳이라고 했다. 밤이 되어야 놀기 좋은 곳이고 했다. 어차피 밤새도록 도박판을 돌아다니고, 구경할 작정이었다.

김봉투 기자 일행 가운데 도박판을 제법 많이 구경한 기자가 있었다. 이 기자가 가장 먼저 딜러 앞에 자리를 잡았다. 100달러 짜리 '빳빳한' 돈을 기세 좋게 꺼냈다. 딜러가 그 돈을 힐끗 보더니 'One hundred'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들었을 것이다.

100달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예행연습'으로 손을 풀어본 '동양화' 화투와 '서양화'인 트럼프와는 어딘가 달라도 한참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는 또 '빳빳한' 100달러를 꺼냈다. 딜러는 또 'One hundred'를 중얼거렸다. 그 돈 역시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런 식으로 사라진 돈이 1,000달러를 넘었다. 딜러가 'One hundred'를 중얼거린 것도 10번을 넘었다.

딜러는 100달러를 딸 때마다 '칩' 몇 개를 공공연하게 자기 호주머니에 챙겨서 넣었다. 아마도 '팁'이었다. 100달러 짜리 '현찰', 그것도 '빳빳한 현찰'은 흔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많은 '수입'을 올려줬으니 딜러가 챙긴 '팁'도 제법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기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빳빳한 달러'를 계속 꺼냈다. 태연하게 꺼냈다. 마치 돈 많은 갑부의 '원정도박'이었다.

딜러는 고객의 정체가 '기자'라고는 아마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에 정체를 알게 되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 분명했다. 미국의 기자라면 '빳빳한' 100달러 짜리 돈만 골라서 지갑이 터지도록 넣고 다닐 리가 없었다. 더구나 '빳빳한 돈'이 모두 '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기절초풍이라도 했을 것이다.

기자 역시 자기 돈이라면 그렇게 잃고도 태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눈먼 돈'이었다. 그래서 허무하게 날리고도 태연할 수 있었다. 김봉투 기자 일행의 지갑은 여러 차례나 호주머니를 들락날락했다. 잃은 돈을 모두 합치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김봉투 기자 일행은 그렇게 밤을 꼴딱 새웠다. 동이 틀 무렵에야 눈들을 좀 붙이자며 잠자리에 엎어졌다.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잠든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랜드캐니언'을 구경하기로 예약이 되어 있다는 전화였다. 빨리 준비들을 하고 호텔 로비로 내려오라는 전화였다.

기자들은 피곤했다. 예약을 취소해달라고 했다. 게다가 그랜드캐니언은 경비행기를 타고 구경하기로 되어 있었다. 캐나다 국경에서 경비행기 때문에 혼이 난 생각들이 떠올랐다. 핑계대기도 좋았다. "경비행기라면 끔찍하다. 다시는 안 탄다." 기자들은 이렇게들 내뱉고 다시 엎어졌다. 약속을 일방적으로, 멋대로 파기한 것이다.

김봉투 기자는 몇 해 전에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밤을 꼬박 새운 적이 있었다. 그 때도 그랜드캐니언을 구경하지 못했었다. 김봉투 기자와 그랜드캐니언은 아무래도 인연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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