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도 마찬가지다. 큰 사람 주변에 붙어 있으면 따라서 클 수 있다. 크는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신분이 상승할 수 있고, 이름을 떨칠 수도 있다. 부(富)를 어느 정도 챙길 수도 있고, 그래서 세력을 과시할 수 있다.
김봉투 기자는 어느 날 갑자기 이 '부기미'가 되었다. '장관'이라는 '천리마'에 따라붙은 '파리'가 된 것이다. 장관 덕분에 태평양을 건널 수 있었고, '칙사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초초특급' 호텔에서 새우잠도 잘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쳐들고 '증명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장관을 따라오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장관의 '부기미'가 되면서 대단한 출세(?)를 한 것이다.
뉴욕에서 수두룩하게 '증명사진'을 찍은 김봉투 기자는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장관의 공식적인 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신나게 놀았지만, 공식 일정이 시작되면 좀 달라져야 했다. 우선, 신문사로 기사 몇 줄 정도는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까짓 기사 따위는 걱정할 것도 없었다. 장관을 수행하는 관리들이 알아서 제공할 것이었다. 기사를 영어로 쓰는 것도 아니었다. 관리들이 말해주는 내용을 '기사 스타일'로 만들어서 신문사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김봉투 기자는 그래도 나름대로 '한미 현안'에 관한 자료도 챙겨놓고, 기사를 구상하기도 했다. 장관 덕분에 호강하는데 기사라도 충실하게 써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관에게 다른 방법으로 보답할 길은 없는 것이다. '무관의 제왕'이 '대한민국 장관'에게 술을 대접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지만 막상 워싱턴에 도착하고 보니 할 일이 없었다. '한미 현안'을 논의하는 회의장을 갈 필요도 없었다. '부기미' 노릇은 수행 관리들이 잘 하고 있었다. 김봉투 기자는 열외였다. 그러니 할 일은 또 뻔했다. 노는 것뿐이었다.
김봉투 기자와 동료 기자는 위싱턴 현지에서 근무하는 관리에게 여기저기 끌려 다녔다. '증명사진'을 찍었다. 낮 시간을 '증명사진'으로 보냈다. 그리고 날이 저물 무렵 호텔로 돌아왔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워터게이트 호텔'이었다. 장관의 '부기미'쯤 되면 이 정도 호텔에서는 묵어야 했다.
호텔에서부터는 또 다른 관리가 김봉투 기자와 동료 기자를 끌고 갔다. 말하자면 '임무교대'였다. 역시 현지에서 근무하는 관리였다. 관리는 김봉투 기자에게 난데없이 '1달러 짜리' 지폐를 한 주먹이나 꺼내줬다. 잔돈이 많이 필요할 테니 챙겨두라고 했다.
그 '1달러 짜리'를 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따라간 곳은 희한했다. 나체에 가까운 젊은 '외국' 여성이 술좌석 사이에서 몸을 비비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그 여성을 들여다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관리는 자주 해본 솜씨를 발휘했다. 춤을 추는 '외국' 여성이 가까이 접근하자 '1달러 짜리'를 돌돌 말아서 가슴팍과 엉덩이에 찔러줬다. '외국' 여성은 돈을 찔러준 관리 앞에서 묘한 포즈를 취하며 춤을 잠깐동안 계속했다. '외국' 여성의 몸에는 곳곳에 '1달러 짜리'가 붙어 있었다.
이런 짓이라면 빠지지 않을 김봉투 기자였다. 배우지 않아도 터득할 기자였다. 곧바로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한 주먹이나 되는 잔돈을 모두 찔러주며 입을 귀밑까지 찢었다. 잔돈이 떨어지자 관리에게 더 내놓으라고 '슈킹'까지 해서 찔러줬다.
'1달러'가 아닌, '100달러 짜리'에 호텔 객실 번호를 적어서 찔러주면 어떻게 되는가 물어보기도 했다. 장관을 따라와서 별 신기한 구경을 다 해보는 것이다. 김봉투 기자의 '한미 현안' 취재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날마다 구경이고, 날마다 유흥이었다.
그럭저럭 워싱턴 취재 마지막 날을 맞았다. 하룻밤을 더 워싱턴에서 보내고 나면 '서부'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장관과 수행 관리들은 아마도 바로 귀국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장관은 바로 귀국하지 않았다. 공식 일정을 마치기 몇 시간 전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장관 비서관이 해명했다. "장관께서는 미국 유학 중인 아들을 만나기 위해 먼저 떠났다. 아직 일정은 몇 시간 남았지만, 별다른 회의가 없기 때문에 아들을 잠깐 만나 얼굴도 보고 용돈도 주고 나서 귀국하겠다며 출발했다. 기자들에게 미안하다고 양해를 부탁하고 떠났다."
김봉투 기자는 워싱턴 취재를 하는 동안 장관과는 얼굴 한번 마주쳐보지 못했다. 그랬는데 장관이 먼저 '증발'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비서관조차 대동하지 않고 '나 홀로' 비행기를 타고 사라져버렸다. 혹시 구설수에 오를 것을 우려해서 비서관을 통해 부탁까지 했다.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김봉투 기자의 머리에 갑자기 누군가가 떠올랐다. 뉴욕 공항에서 봤던 '로비스트'였다. 장관과 '로비스트'는 아마도 어디선가 만난 것 같았다. 아들에게 용돈을 주겠다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았다. 추측이었다.
그렇다고, 더 캐묻지도 않았다. 캐물을 여유도 없었다. 왜냐하면 김봉투 기자도 바빴기 때문이다. 빨리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비서관은 '당근'까지 내밀었다. "장관께서 기자들이 귀국할 때까지 불편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두루 부탁해놨다"는 것이다. 편하게 놀다가도록 조치해 놓았으니 장관의 개인 행동 가지고 신경 쓰지 말아달라는 얘기였다.
과연 그랬다. 김봉투 기자는 신나게 노는 것은 물론이고 돌아가는 귀국 비행기에서도 '칙사대접'을 받았다. 장관 없이 기자뿐인데도 '칙사대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