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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촌지실록'<31>-강간사건 조서 읽는 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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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투기자의'촌지실록'<31>-강간사건 조서 읽는 女기자
  • 정리=김영인 기자 kimyin@consumernews.co.kr
  • 승인 2007.07.31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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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무관의 제왕'이라면 여기자는 뭘까. 아마도 '무관의 여왕'이다.

김봉투 기자가 경찰서를 출입하던 '피라미' 시절, 꼭두새벽에 경찰서에 도착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형사가 야간당직을 하고 있었다. 기자가 경찰서를 출입하다보면 말투도 마치 '형사'처럼 된다. '반말' 비슷하게 변하는 것이다.

김봉투 기자의 말투도 그랬다. 경찰서에 들어서면서 외쳤다.
"뭐, 없어? 왜 이렇게 조용해. 요즘 형사들은 일도 안 하나?"

형사가 친근한 척 말을 받았다. 그렇지만 투덜거렸다.
"사건이라곤 하나도 없어. 조용해. 하지만 기분 잡쳤어. 아침 해장국 맛도 없을 거야."

형사는 그러면서 얘기를 끄집어냈다. 얼마 전부터 경찰서에 새로 출입하기 시작한 여기자에 관한 얘기였다. 형사는 이상하게도 여기자를 싫어했다. 마치 '여형사'처럼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싫었다. 여기자가 경찰서 형사계에 나타나면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거나 아예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했다.

그런 형사에게 여기자가 새벽같이 나타난 것부터가 싫었다. 별것도 아닌 '단순 사망사고'를 가지고 지겹도록 캐묻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당직근무 중이라 피할 수도 없어서 이것저것 대답해주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했다.

"암탉이 울면 거시기 한다더니, 여기자가 새벽부터 나타나면 하루종일 재수가 없단 말이야."

여기자가 극히 드물던 시절이었다. 여기자가 경찰서를 출입하는 것은 더욱 드물던 시절이었다. 경찰서를 출입하는 여기자는 그야말로 '홍일점'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여기자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어떤 짓궂은 형사는 '야릇한 조서'를 준비해두었다가 여기자가 나타나면 일부러 보여주기도 했다. 강간사건, 간통사건 등 '젊은 여성'인 여기자가 보기에는 껄끄러운 내용이 들어 있는 조서다. 이른바 '물총 사건'에 관한 조서다.

여기자도 경찰서에 들어서면서 던지는 말은 남자 기자와 다를 바가 별로 없다. '뭐 있어요'하면서 들어선다. 그럴 때 짓궂은 형사가 '이것밖에 없어요'하면서 미리 준비했던 조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경찰관이 작성한 조서인 만큼, 완벽할 수밖에 없다. '6하 원칙'이 철저하다. 예를 들면, 강간사건 피해자 조서의 경우 강간을 당하면서 '느끼기도 했는가'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느꼈다면 몇 차례나 느꼈는가', '느낌의 강도는 어땠는가' 등등의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미혼인 '젊은 여기자'가 읽어보려면 껄끄럽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이런 '노골적인 조서'를 보면서도 여기자는 안색조차 변하지 않았다. 그랬으니 형사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서'를 읽으라고 던져주던 형사의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되는지는 모르겠다.

여기자는 신문사 내에서도 골칫거리였다. 신문사 사회부의 경찰 출입기자들은 번갈아 가면서 '야근'을 해야 한다. 밤중에 터지는 사건과 사고를 체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밤새도록 경찰서, 병원 등을 찾아서 싸돌아다녀야 한다. 잠이라고는 신문사 책상이나 소파 위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이 고작이다. 무척 고달픈 일이다. 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 피곤하고 험한 일을 여기자에게 시킬 수는 없었다. 밤중에 험한 곳을 돌아다니다가 만약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자는 야근 대상에서 예외였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여기자에게 야근을 면제시켜준 것만큼 남자 기자들이 야근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자 덕분에 남자 기자들이 그만큼 더 고달파지는 것이다.

여기자는 또한 남자 기자에게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했다. 야근을 면제해주었으면 일찍 퇴근해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기자들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했다. 오히려 '차별대우'하지 말고 야근을 시켜달라고 우기기도 했다.

술을 마시다보면 음담패설이 나올 때도 있다. 욕지거리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자가 자리에 함께 있으면 아무래도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술맛도 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자는 환영받지 못했다. 퇴근시간 후에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도 여기자는 악착같이 술자리를 따라다니곤 했다. 어쩌면 '여기자 근성'이었다.

출장을 갈 때도 여기자는 골칫거리였다. 국내 출장이든, 해외 출장이든 마찬가지였다. 우선, 여기자에게는 숙소부터 신경을 써줘야 했다. 호텔 객실을 특별히 고려해서 배정해줘야 했다. 술을 마시러 갈 때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 기자들이 '파트너'를 부른다고, 여기자에게 '남자 파트너'를 불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서 "남자 기자들이 취재는커녕 파트너나 불러서 엉뚱한 짓을 하고 놀았다"고 '폭로(?)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경우를 감안해서 아예 '파트너' 없이 술을 마셔야 하지만, 그러면 맥이 빠진다. 모처럼 출장 온 '보람'이 없어진다.

김봉투 기자가 중국을 '취재'했을 때 그랬다. 일행 가운데 여기자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무관의 제왕'뿐 아니라 '무관의 여왕'도 있었던 것이다. 낮 시간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무난했다. 남자 기자들끼리 몰려다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같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관광을 하고, '취재'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저녁때가 되면서 곤란해졌다. 여기자가 귀찮아진 것이다. 여기자와 함께 있으면 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가라오케를 가기로 일정을 잡고 있었다. 폭탄주를 마시고 '파트너'를 불러서 떠들썩하게 놀아볼 판이었다. 그곳까지 여기자를 데리고 가기는 곤란했다. 그렇다고 떼어놓고 갈 수도 없었다. 차별대우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 뻔했다.

마침 김봉투 기자 일행을 초청한 '주최측'이 나섰다. '주최측' 직원이 여기자를 따로 안내하기로 한 것이다. '주최측' 직원은 분위기 조용한 곳에서 여기자와 함께 포도주를 마셔줘야 했다. 여기자를 상대하는 노하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최측' 직원은 졸지에 여기자를 위한 '기쁨조'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김봉투 기자 일행 가운데 간사도 별 수 없이 여기자와 동행했다. 술을 마시며 불평을 재워줘야 했다. 간사는 여기자를 매끄럽게 숙소로 돌려보내고 나서야 가라오케로 합류할 수 있었다. 기자실 간사라는 직책은 기자들 '복지' 챙기고, 여기자 '접대'하고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았다.

남자 기자들은 자신들을 '감시(?)'할 수도 있는 여기자를 그렇게 떼어버릴 수 있었다. '감시'가 없는 가라오케는 즐거웠다. 신나게 폭탄주를 들이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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