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보다 실업자, 낙오자라는 비웃음, 손가락질이 더 무섭고 두렵다. 그래서 헬멧도 없이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릴 생각이다. 퀵서비스맨에 바짝 달라붙어도 눈을 찌르는 모래먼지를 피할 수 없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난다. 곡예운전, 역주행, 신호위반을 각오해야 한다. 택시를 타고 가려는 친구들도 있다. 불안하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꿈을 실을 수밖에 없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 번 타는 데 10만원이다. 그는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이렇게 썼다. “퀵은 목숨을 건 질주입니다. 가격이 비싸도 무감각하게 이용하고 위험해도 타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슬픕니다.”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신입사원을 뽑는 삼성은 21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서울시내 25개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다. 한화는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압구정동 구정고등학교와 광장동 광남고등학교에서 이공 계열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른다.
지난 14일 오후 1시 서울시 서초동 양재고등학교 앞. STX의 인적성검사(SCCT)가 끝날 무렵 학교 정문에는 10여대의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쫓기듯 뛰어나온 수험생 사이에서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이름을 부른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직무적성검사(HYNAT)장인 행당동 한양대까지 30분 안에 가려면 조금도 지체할 수 없다. 수험생들은 예약된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탔고 급출발하는 오토바이들 뒤로 한 수험생의 모자가 날렸다.
포털사이트 취업 관련 동호회에는 퀵서비스 이용과 관련한 정보를 교환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입사수험생을 겨냥한 퀵서비스 악덕상혼까지 판을 친다. 한 퀵서비스업체 관계자는 “거리를 불문하고 30분 안에 목적지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달해야 하기 때문에 기사도 목숨 걸고 운전한다”면서 “요금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헤럴드경제가 강남역과 광화문 등에 있는 대형 퀵서비스업체 5곳에 이씨와 같은 코스대로 광장동에서 압구정동까지의 견적을 요청하자 10만원을 달라는 업체가 2곳, 7만원이 1곳, 5만원이 2곳이었다. 한 퀵서비스업체 관계자는 “우리 오토바이는 배기량이 크고 보험까지 들어 좀 비싸다”고 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2주 정도 전부터 주말에 입사수험생들의 예약이 폭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박모(28) 씨는 “하반기 공채 기간에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했다가 되팔까도 고려했다”고 했다.
청년실업 100만명 시대, 우리의 미래인 젊은 인재들이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려 입사시험장을 오가는 것은 2007년 10월 대한민국의 부끄럽고 슬픈 자화상이다. 도대체 기성세대들은 무엇을 했던가. 그들의 꿈과 희망을 모른 체하지는 않았는가.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취업을 포기한 청년층의 순수 비경제활동인구는 지난해에 비해 10만명 늘어난 415만명. ‘청년실업 100만 시대’라는 말은 오히려 경고가 아닌 목표가 돼야 할 듯싶다. 정부는 말로만 일자리를 늘린다고 했다. 속수무책 허송세월하는 동안 한국의 꿈과 미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려 무심한 청춘을 한탄하고 원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정식 기자(yjs@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