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경주 기자]'왜 이런 곳에 편의점을 냈을까?'
본사측의 허위정보에 속아 점포를 냈다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주들의 제보를 받고 찾아 간 서울 양천구의 한 CU 편의점 입구에서 든 의문이다.
이 점포는 불과 수십 미터 거리에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과 대형마켓이 좁은 상권을 나눠 먹고 있었다.
“저도 바보가 아닌데 경쟁 점포가 두 곳이나 있는데 출점을 했겠어요? 개발자한테완전 속았죠. 속아서...”
전업 주부였다가 CU를 통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김혜경(가명 42)씨는 깊은 한숨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사의 점포개발자가 GS25와 대형마켓이 근처에 있어도 하루 평균 매출 200만 원을 찍을 정도로 알짜 상권이라고 말했어요. 원래 다른 업종이 있던 이 자리에 점포를 열어도 하루 최소 150만 원 매출은 나온다고 했고요.”
김 씨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개발자의 설득에 결국 마음을 돌렸고 보증금과 권리금, 가맹비 등 총 1억2천만 원을 들여 지난해 가을에 점포를 열었다.
하지만 막상 영업을 시작하고 처음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매출은 30만 원 정도였고, 담배를 팔기 시작한 후에도 60만 원에 그쳤다.
제품 원가와 본사가 떼어가는 수수료 35%를 제하고 나니 점주에게 떨어지는 몫은 월 380만 원 남짓했다. 여기서 임대료 200만 원과 인건비 250만 원, 잔존가(인테리어 감가상각비용)와 전기세 등 80만 원을 차감하니 한 달에 150만~200만 원의 적자가 났다.
6개월 연속으로 통장에서 돈만 빠져나가는 것을 본 김 씨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결국 본사에 폐점을 문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위약금 4천600만 원을 물어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편의점이 어디 점주의 노력만으로 되는 사업인가요? 회사가 광고를 하고 가맹점을 모집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나 몰라라 하면서 폐점비용으로 4천600만 원을 내놓으라니…. 밤낮으로 일한 제 인건비로 한 달에 100만원이라도 챙길 수 있으면 계속 할 거예요.”
김 씨는 절망에 젖어 긴 한숨만 거푸 토해냈다.
억울한 마음에 제보를 하기는 했지만 김 씨는 본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점포 위치는 제발 밝히지 말아 달라고 기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김 씨는 자기 점포에 대한 사진촬영도 만류했다.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CU점포들도 비슷한 상황이였다.
김 씨의 점포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김 씨와 비슷한 시기에 편의점을 시작한 박상호(가명 58) 씨도 6개월 연속 적자였다. 박 씨의 경우에도 수십 미터 거리에 다른 상호의 편의점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 평균 130만 원의 매출을 거뜬히 올릴 수 개발자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박 씨는 매출전표와 계약서, 아르바이트 직원 인건비를 계산해놓은 노트를 꺼내 놓고 직접 설명을 해줬다.
박 씨는“그나마 나는 편의점을 운영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비용절감을 할 수 있어 월 10만원 적자에 그치고 있다”며 “이웃 CU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60대 노부부가 밤 낮으로 교대근무하고 있는데 무리하다 병이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씁쓸해 했다.
박 씨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현재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4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그래도 적자를 면할 길이 없어 올해 중순 쯤 폐점 할 계획이다.
박 씨는 1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다른 CU 점포 2곳도 매출이 저조해 최저수입보장제도를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저수입보장제도는 매출에서 원가와 수수료를 제한 점주 몫이 월 500만 원이 안 될 경우 가맹본부가 월 20만 원 가량을 지원하는 제도다.
박 씨는 “나를 포함해 이 근방 1km이내에 있는 CU점주 4명이 모두 최저수입보장제도를 받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최저'를 받고 있다는 건 적자가 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 중 한 점포는 경쟁편의점이 이미 망해 나간 자리인데도 개발자가 허위로 매출을 부풀려 점주를 유치했다고 전했다.
이들 모두 개발자의 말만 믿고 편의점을 냈다가 장사를 계속할 수도,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처지에 몰렸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점주들은 본사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본부에 찍히면 얼마 안 되는 장려금도 받지 못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박 씨는 “피해점주들이 힘을 모아 항의해야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을 텐데 CU영업사원들이 점주들끼리 교류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상부에 보고하고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는 점주들이 없다”며 “장려금이 끊기거나, 폐점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CU가맹본부는 예상 일 매출을 제공하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CU관계자는 “공정위가 지난해 말 모범거래기준을 제정하기 이전엔 CU가맹본부 차원에서 예상 일매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의무가 없는데 CU에게 책임을 따지는 것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말 모범거래기준을 제정해 가맹본부가 가맹희망자(점주)에게 계약체결 7일전까지 점포예정지의 인근 경쟁점 현황, 월 예상매출액 및 그 산출근거 등을 포함한 상권분석 보고서를 서면으로 열람·설명하며, 계약체결 시 해당 서면을 교부하도록 했다.
CU 측은 이 같은 사실에 의거해 일 매출 제공이 과거 의무사항이 아니었다는 점만 강조했을 뿐, 허위 숫자를 제공한 데 대해서는 해명을 회피한 셈이다.
사실 편의점업계의 중복, 과밀출점으로 인한 피해는 비단 CU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CU를 비롯한 편의점 상위 5사 전체 점포수는 지난 2008년 1만1천802개에서 2011년 2만393개로 78.1%나 급증한 반면, 가맹점 평균 연매출이 같은 기간 5억3천만 원에서 4억8천 만원으로 9.5% 감소했다.
CU의 경우 최근 거제도의 한 점주를 영업실패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터지면서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자살사건에 이어 CU 가맹점주가 본사측의 허위과장 정보제공을 통한 점주 모집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고 나선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CU를 비롯한 편의점 가맹본부는 무리하게 점포를 늘려 사세를 확장하는 데만 치중할 게 아니라 모집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양심적이고 정확한 상권분석을 통해 가맹점주들을 보호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마이경제 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