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투자 많이 하는 기업인들은 업어 줘야 한다"며 재벌그룹에 투자확대를 독려하고 있지만 국내외 경기 침체와 당국의 사정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대기업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상환이 버거울 정도로 자금도 타이트해지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중 올 하반기에 회사채를 상환 및 차환해야 하는 기업은 23개 그룹 61개사로 만기회사채 규모는 10조1억4천5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61개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3조7천897억8천500만 원으로 만기 회사채의 2.3배로 조사됐다. 만기 회사채를 전부 상환하고도 13조 원이 넘는 돈이 남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는 현대엔지니어링과 LG전자, 삼성물산 등 일부 기업이 만기 회사채 금액의 10배가 넘는 현금성 자산을 쌓아 놓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조사대상 61개 가운데 30개사는 현금성 자산이 만기 회사채 금액의 2배 미만이고, 이중 17개사는 100% 미만이라 가진 돈으로 회사채를 상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비교적 자금여유가 있는 기업들도 투자를 꺼리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연방위원회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정책, 중국 경기 회복세 둔화 등 어느 때보다 투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탓이다.
여기에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관세청 등 각 부처가 재벌 비리를 캐내기 위해 경쟁하듯이 조사를 벌이고 있어 재벌그룹들은 더욱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재벌그룹들은 대외적인 여건이나 최근 분위기를 보면 투자에 나설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투자를 주문한 사실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재벌에 대한 여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에 뒷짐만 지고 있다가 미운 털이 박히지 않을까 해서다.
61개사 가운데 자금 여력이 가장 부족한 기업은 동부제철이다. 동부제철(대표 김준기)은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가 2천470억 원이나 되지만 현금성 자산은 10분에 1 남짓한 259억 원에 불과했다.
동부제철은 이에 따라 지난 4월 계열사인 동부하이텍의 주식 235만주를 아주저축은행에 맡기고 80억 원대의 대출을 받는 등 자금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마트 출점에 따른 대규모 자금 소요가 많은 이마트(대표 허인철)의 경우 만기회사채가 현금성 자산의 6배 규모에 달했다. 이어 포스텍(대표 김효중)이 4.4배, 한화(대표 김승연)가 3.7배, 한진(대표 조양호)이 2.6배, 포스코아이씨티(대표 조봉래)가 2.5배, 현대비앤지스틸(대표 정일선)이 2.4배, 가온전선(대표 구자엽)이 2배를 기록했다.
또 포스코에너지(대표 오창관)가 1.8배, 동부건설(대표 이순병)이 1.4배, 한화건설이 1.2배, GS칼텍스(대표 허진수)와 STX팬오션(대표 강덕수), 대림코퍼레이션(대표 박찬조), SKC(대표 최신원)가 1.1배, SK브로드밴드(대표 안승윤)가 1배의 비율을 보였다. 이들 기업은 보유중인 현금성 자산으로 회사채를 상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SK건설(대표 조기행, 최광철)은 현금성 자산이 만기 도래 회사채의 50% 수준이지만 올 1분기 중동건설 시장 등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을 입은 바 있어 투자여력은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룹별로는 SK그룹(회장 최태원)이 만기회사채 대비 현금성 자산이 200%미만인 계열사를 6개나 보유해 가장 많았다.
그 뒤로 한화(회장 김승연)가 3개, 현대자동차(회장 정몽구)와 롯데(회장 신동빈), 포스코(회장 정준양), GS(회장 허창수), 대림(회장 이준용), 동부(회장 김준기), LS(회장 구자열), STX(회장 강덕수)가 각각 2개씩으로 나타났다.
삼성(회장 이건희)과 현대(회장 현정은), 금호아시아나(회장 윤영두), 신세계(회장 이명희), 한진(회장 조양호)은 1개씩이었다. 업종별로는 석유·화학이 6개로 가장 많았고, 건설이 5개, 전자 및 IT와 서비스가 4개씩, 운송이 3개, 철강·조선중공업·유동 2개, 에너지와 식음료 기업이 1곳씩 포함됐다.



